- 가톨릭뉴스
- 전체 2건
[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김영자 수녀 | 2024-07-17 |
---|---|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와 성소 어려서부터 창의적인 놀이를 좋아했어요. 만들고 그리며 오려 붙이고 하는 놀이를 많이 했죠. 아버지께서는 옹기공장을 운영하셨는데요, 제가 흙으로 만든 것들을 가마에 넣어서 구워주시곤 하셨어요. 인형 놀이를 하더라도 직접 만들었고요. 그런 놀이들이 지금의 저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해요. 초등학교 입학 후 첫 미술 시간에 그림을 하나 그렸는데, 선생님께서 그림을 보시곤 고학년 언니 오빠들도 잘해야 들어갈 수 있는 미술반에 들어오라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너무 좋았어요. 당시 제게는 12색 크레파스 세트가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격려와 지원하는 마음으로 24색 세트를 사주셨어요. 얼마나 기쁘던지요. 그 후로 줄곧 미술반 활동을 했어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진로도 미술대학으로 잡았죠. 그런데 제가 원했던 학교에 떨어지고 말았어요. 재수를 준비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성소를 느꼈어요. 제 외가는 순교자 집안이예요. 외고조할아버지께서 충주 달래강에서 순교하셨다고 들었어요. 외고조할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네 영혼 구령을 위해 울라’고 외고조할머니께 말씀하셨다고 해요. 부모님께서는 집안 어른들이 물려주신 순교정신을 따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셔서, 저도 그 신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요. 부모님은 8남매를 두셨고, 두 분 사이도 무척 좋으셨어요. 우리 형제들은 미사하는 소꿉놀이를 하면서 놀았어요. 하지만 성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재수를 준비할 무렵, 어머니께서 매우 편찮으셨어요. 아버지께서 병석에 누우신 어머니 시중을 드는 모습을 보는데, 참 따뜻하고 아름다워 보였어요. 어머니께 ‘나중에 아버지 같은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어머니께서는 ‘네 아버지가 나한테 참 잘하지. 하지만 인생은 궁극적으로는 혼자 가는 것이야’라고 말씀하셨어요. 한동안 그 말뜻을 곰곰이 되짚어 보면서, 화목하고 행복하게 보였던 어머니에게도 외로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때부터 제 안에는 세상 속에서 어렵고 힘들고 소외된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같이 있고 싶어졌죠. 그러한 마음이 주님의 작은 도구가 되고 싶은 열망으로 이어졌어요. 그렇게 성소를 꿈꾸게 됐고, 응답하게 됐어요. 이 이야기를 본당 수녀님께 하니 수녀님께서는 바로 수녀원에 가야 한다고 데리고 가셨어요. 맘속에는 대학을 다닌 후에 입회하고 싶었는데요, 아마 대학을 다녔으면 입회를 안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여러 성당 다니며 다양한 작품 통해 공부 미술 공부를 포기하고 수녀회에 들어갔는데, 수련기를 거치면서 수도회에 있는 미술부 소임을 맡게 됐어요. 미술부에서 제가 그린 그림을 다른 수녀님들이 무척 좋아해 주셨어요. 많이 격려도 해 주셨고요. 저는 수도회에 필요한 그림들을 기쁘게 그렸어요. 첫 서원을 마쳤는데, 장상 수녀님께서 그림을 전공한 수도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제게 미술 공부를 권하셨어요. 그래서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게 됐어요. 친구들과 협업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게 좋았어요. 방학이면 사진기를 들고 여러 성당을 다니면서 많은 작품들을 봤어요. 작가들이 어떻게 건축, 성물, 유리화 등을 작품으로 표현했는지, 그리고 좋은 작품 안에서 그분들의 신앙을 느끼고 감동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서울 장충동에 있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서울 수도원에서 유리화를 배울 기회가 생겼어요. 수사님들이 기쁘게 맞아주셔서 2년 동안 출퇴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유리화 작업 기술뿐만 아니라 수도자로서 사는 데 필요한 좋은 영향을 덤으로 받아왔지요. 서울 문정2동성당 지하 1·2층을 혼인미사를 봉헌하는 곳으로 리모델링하고 간접선교의 장으로 카페를 만들어 달라고 제게 부탁하셨어요. 그 당시에는 성당에 카페가 없었죠. 고민이 많았는데,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일을 진행했어요. 신부님께서도 많이 격려해 주셔서 용기를 갖게 됐어요. 그 후로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많은 작품을 할 수 있었어요. 서울 도림동성당 ‘이현종 신부·서봉구 형제 순교기념관’은 설계에서부터 기념과 유물 정리, 전시장 문구, 유리화, 성물 등 여러 가지를 맡게 됐어요. 힘은 들었지만 신앙적으로 뜻깊고 감사한 작품이 나오게 되었어요. 작품이 하느님을 만나는 작은 도구가 되길 지금은 성당에서 의뢰가 들어오면 우선 신자들의 마음을 읽기 위해 함께 미사에 참례해요. 그곳이 더하거나 덜하지 않고 알맞은 기도의 전례 공간이 되어, 찾는 모든 이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고 알아가는 열린 공간이 되도록 노력해요. 그래서 어디 하나 소홀함 없이 건축에서부터 성물, 공간디자인, 그림, 조각, 유리화, 성당 로고 디자인, 작은 소품까지 두루 마음을 쓰게 돼요. 좋은 스승들을 만나 공부한 것이 제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된 것 같아요. 특히 ‘기초’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봉상균 교수님의 가르침은 잊을 수가 없네요. 이 자리를 빌려 저와 함께 작업하시는 공방분들께 깊이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몰라요. 다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그 방향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라고 믿어요. 제 작품을 보고 마치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작품처럼 하느님을 떠난 작은 영혼이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기를 기도해요. 그리스도를 만난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탈렌트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려요. ◆ 김영자 안셀모 수녀는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
|
[가톨릭신문 2024-07-17 오전 9:12:11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