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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쫓기는 미혼부모 가정, 교회와 함께한 나들이에 웃음꽃 활짝 | 2024-0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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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당. 벌레를 무서워하는 하얀(가명, 4)이가 뭣도 모르고 푸른 잔디 위 개미를 죽이려하자 한 언니가 뜯어말린다. “그만해! 개미도 살아야지. 너도 살고, 우리도 살아야지!” 초등학교 1학년생 아이의 생각이 기특해 물었다. “기쁨(가명)아, 방금 왜 그런 말을 했어?”(기자) 아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개미도 생명이니까요.” 아이들끼리 생명을 나눈 이 시간은 대구대교구 소속 미혼모자생활시설 가톨릭푸름터가 13~14일 엄마와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반짝반짝 신라, 두근두근 여행’이다. 가톨릭푸름터는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미혼부모기금위원회가 펼치는 미혼부모기관사업을 통해 시설에서 함께하고 있는 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교회가 인간 존중과 생명의 소중함을 지켜나가는 기관과 부모·자녀를 위해 선물한 시간이기도 하다. 가톨릭푸름터 가족들의 경주 탐방에 동행했다. 엄마랑 손잡고 여행 햇볕이 푸근히 내리쬐는 13일 경북 경주시. 가톨릭푸름터의 도움으로 자녀를 출산한 엄마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하나둘씩 버스에서 내렸다. 모처럼 뜻깊은 1박 2일 나들이에 참가한 이들은 8가정과 기관 관계자 등 22명 대식구다. 아이들 대부분은 초등학교 1학년. 설립 60년이 넘은 가톨릭푸름터는 현재 자립한 가정들을 대상으로 기간에 관계없이 사후관리를 하고 있다. 현재 원내에는 미혼모자 10가정이 지내고 있다. 아이 손을 잡고 밖을 향해 발을 내딛는 엄마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가까운 곳은 자주 다녔는데, 아무래도 아이들이랑 멀리는 여행 올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새 모이 주기 체험’이 많이 기대돼요.” 두 살 터울 남매를 키우는 엄마 박나영(가명, 29)씨가 자녀들보다 더 들떠 보였다. 최근에서야 친구들도 하나둘 엄마가 되고 있지만, 나영씨가 첫째 아이를 가졌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그런 세월을 뒤로하고 함께 지냈던 엄마들과 나들이 나온 자체로 기쁘단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겐 세상 밖 넓은 곳곳이 다 체험의 장이다. ‘화과자 만들기 체험’을 하는 아이들의 눈이 빛났다. 쌀가루에 설탕을 섞은 반죽을 만져 보고, 연신 냄새도 맡아 본다. 고사리 손으로 동글동글 모양을 빚더니 엄마 몰래 입에 넣기도 한다. 특이하게도 아이들은 꼭 자기 엄마 옆에만 붙어있진 않았다. 익숙한 듯 친구 가정과 이모들 옆에도 자연스레 가서 섞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각기 자립해 생활하지만, 엄마들끼리 가톨릭푸름터에서 임신부터 출산까지 함께했던 끈끈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또한 태어날 때부터 성장을 같이하며 둘도 없는 소꿉친구로 지낸다. 알록달록 화과자를 만드는 하준(가명, 초1)이가 “빨리 만들어서 먹어보고 싶다”며 열심이다. 엄마 전슬기(가명, 24)씨는 “열심히 하니까 기특하기도 하고, 기분이 묘하다”며 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들에겐 추억을, 엄마들에겐 쉼을 어쩐 일인지, 화과자 만드는 데 엄마들이 더 열심이다. 평소 육아로 자신을 위한 시간은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생계도 전적으로 홀로 책임지고 있다. 엄마들은 식사 담당·안전요원 등을 자처하며 이날만큼은 서로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애썼다. 아이들도 화장실을 가고 싶거나 어른 도움이 필요할 때, 곧잘 이모들에게 손을 뻗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의 아픔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세상에 둘도 없는 가족이다. 아이들이 이날 가장 기대했던 수영 시간. 수영장이 있는 숙소 도착 전부터 하얀이는 “예쁜 수영복을 가져왔다”며 자랑을 늘어놨다. 아이들이 즐겁게 수영하는 동안 엄마들은 모처럼 티타임을 가졌다. 저마다 육아 비법도 공유하고 일상을 나누다 보니 웃음꽃이 절로 피었다. 가톨릭푸름터는 이번 행사가 아이들이 안전하게 즐거운 추억을 쌓고, 엄마들이 마음의 여유를 갖는 시간이 되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3월부터 프로그램을 기획해 사전답사도 다녀왔다. 어린이용 문화책자를 통해 아이들에게 경주에 대해 이해시키고, 엄마들과 공유했다. 그래선지 첫 방문인데도 아이들은 곧잘 적응했다. 아이들은 문화체험탐방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달력 날짜를 세었다고 한다. 문화체험탐방 일정을 총괄 기획한 가톨릭푸름터 김미혜(젬마 갈가니) 생활팀장은 “아이들을 고려해 여유롭게 프로그램을 계획했다”며 “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들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은성 사회복지사도 “이 같은 여행은 엄마들이 개인적으로 계획해 다녀오기엔 부담될 수도 있는데, 교회 지원으로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이 되어 덩달아 뿌듯하다”고 했다. 출산부터 양육까지, 교회가 함께 가톨릭푸름터 엄마들 곁엔 아이들이 있고, 또 함께하는 다른 엄마와 교회가 있었다. 훌쩍 큰 아이들이 이만큼 삶의 기쁨이 될 줄은 엄마들 스스로도 몰랐다. 25살 때 주은(가명, 초1)이를 가진 김원영(가명, 32)씨가 지난날을 회상했다. “임신 6개월 때 주은이를 가졌다는 걸 알았어요. 병원 가기 전까진 아이를 낳아야할지 정말 고민 많이 했습니다. 초음파로 주은이가 뱃속에 있는 걸 보니 낳아야겠더라고요.” 태아를 마주하고 출산을 결심한 뒤 도움받을 곳을 찾던 중 가톨릭푸름터를 알게 됐다. 원가족에게 임신 사실과 출산 의지를 전할 때는 기관이 함께해주었다. 출산 후에도 고비는 찾아왔다. 주은이가 세 살까지 분유 외에 음식을 전혀 먹지 않아 걱정이 컸다. 어쩔 줄 모르는 원영씨에게 가톨릭푸름터는 친정이 돼줬다. 주은이는 어느덧 엄마와 목욕탕도 같이 가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 “주은이를 재우려고 누워있으면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어찌나 조잘대는지, 얼마나 웃기고 귀여운지 몰라요. ‘낳길 잘했다’ 싶어요.” 하진(가명, 초1)이와 하얀이의 엄마 유라희(가명, 32)씨도 25살 때 첫 아이를 가졌다. “사실 아이를 지워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이 아이를 낳아서 키울지, 아니면 입양 보낼지가 고민이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키워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굳더라고요. 모성애였나 봐요.” 거의 10년 차 엄마인 라희씨는 앳된 외모를 가졌지만, 육아 실력만큼은 베테랑이다. “저도 이젠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지만, 미혼모 중에 정말 어린 친구들이 많거든요. 도움이 간절할 때가 많은데, 가톨릭푸름터를 비롯해 도움을 주는 교회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가톨릭푸름터 이윤숙(레지나) 원장은 원가족의 지원을 받기 힘든 미혼모들에게 ‘제2의 친정엄마’가 돼주고 있다. 이 원장은 “가톨릭푸름터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도록 함께할 것이며, 엄마들은 이곳에서 형성된 사회적 가족 안에서 서로 기대며 형제자매로 더욱 거듭나길 기도한다”고 전했다. 엄마의 기쁨, 그리고 새 생명 기쁨이 엄마 박미연(가명, 49)씨는 아이를 만나고 자신이 생명을 새로 얻은 기분이라고 고백했다. “기쁨이를 만나기 전까지 많이 힘들었거든요. 처음 기쁨이를 낳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대도 많았지만, ‘이 아이가 나를 살리려고 온 것 같다’고 하니 모두 사랑으로 받아들여 줬어요. 기쁨아, 엄마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거 알지? 아프지 않고 씩씩하게 자라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이름처럼 기쁘고 행복하게 살자. 오늘도 엄마가 사랑해.”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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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7-17 오전 8:12:08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