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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그 화려한 추억 2024-07-16

난 중학교 3학년이던 해 부활시기에 세례를 받았다. 그해 초여름, 내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닥쳤다. 미팅에서 만난 여학생 가운데 한 명이 미팅 다음날 가출 후 무단결석을 한 것이다. 그 시절에 벌써 미팅을? 맞다. 솔직히 미팅이라기보다 호기심 어린 만남 정도라고 해야 옳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여학생과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선생님 허락없이 비밀리에 만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캔들이었다. 문제는 미팅에 나온 남녀 멤버들의 이력이 범상치 않았다는 데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 꼴이었던 나는 예외였다.

그녀의 돌발 행동에서 비롯된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졌다. ‘몰래만남’은 금새 탄로 났고, 무단결석의 원인 역시 ‘만남 때문’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학교에선 긴급 교사회의가 열렸다.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그 무렵, 학교를 파하기 무섭게 나는 세례 본당인 대구 계산성당으로 달려가 머리를 파묻고 기도했다. 아주 열렬하게.

“주님 두렵습니다. 제가 정학이라도 받게 되는 날엔... 한번만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앞으로 주님 당신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오죽 답답했으랴. 나는 결국 하느님과 지키지도 못할 엄청난 약속을 덥석 하고 말았다. 기도를 들어주신 걸까. 나 혼자만 구제되고 전력(前歷)이 있던 친구들은 모두 유기 혹은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특별한 지향을 갖고 묵주의 9일 기도를 해 본 적이 몇 번 있다. 아시겠지만 묵주의 9일 기도는 청원의 기도 27일과 감사의 기도 27일 총 54일 기도로 이루어진다. 54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묵주기도 5단을 한다는 게 처음엔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랬다. 깜박하고 있다가 밤 12시를 넘겨 꾸벅꾸벅 졸면서 기도를 하고선 ‘이 기도가 어제 몫인지, 오늘 분량인지’ 난감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거듭될수록 기도도 하면 할수록 는다는 체험을 했다.

언제인가 순교자성월에 부산 오륜대순교자기념관 미사에 참례한 적이 있다. 신부님의 강론 중 한 구절이 가슴에 남았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이 영광송 한 구절에 우리 신앙의 지향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영광송만으로도 훌륭한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날 이후로 자주 십자성호와 함께 영광송을 바치곤 한다. 불안과 답답함이 엄습해올 때, 화가 날 때, 집중하고 싶을 때 짧은 기도 한 구절로 위로와 평화를 얻는다. 


글 _ 전대섭 (바오로, 전 가톨릭신문 편집국장)
가톨릭신문에서 취재부장, 편집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바보’라는 뜻의 ‘여기치’(如己癡)를 모토로 삼고 살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07-16 오전 9:12:05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