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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쓰레기 활용한 독보적 작품으로 환경 경각심 일깨운다 2024-07-10

양준성(활동명 양쿠라) 작가가 해양쓰레기로 만든 작품 ‘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국내 해양쓰레기 발생량은 연간 14.5만 톤 수준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매년 800만 톤 이상 배출된다. 북태평양 쓰레기 섬은 한국 면적의 16배에 달한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해진 상황이지만, 일상에서 체감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설치미술가 양준성(베드로, 활동명 양쿠라) 작가는 이미 2008년부터 해양쓰레기의 심각성을 전면에 나서서 알리고 있다. 해양쓰레기를 활용한 독보적인 작품으로 관람객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는 양 작가. 그의 시선은 비단 환경에 머무르지 않는다. 쓰레기의 시선에서 사람들의 이기심을 바라보고, 평화에 대해 깊이 숙고하기도 한다. 양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 봤다.
 

해양쓰레기로 만든 '한국 몬스터'와 '북한 몬스터', '중국 몬스터'(왼쪽부터).


몬스터

몸통 하나에 얼굴이 세 개다. 괴물 같은 형상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이 작품은 ‘몬스터’. 세 얼굴은 각각 한국·북한·중국을 상징한다. 작품 재료는 모두 서해안으로 떠밀려온 해양쓰레기다. 양 작가는 쓰레기 출처를 역추적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국가별 쓰레기를 구분하고, 각 국가의 국기를 모티브로 삼아 형상화했다.

그는 “해양쓰레기는 국경을 넘어 구분 없이 떠다니고 있다”며 “세 나라 모두 관심과 책임을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그는 한국 쓰레기는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한반도 주변의 해류가 대마도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확인한 양 작가는 직접 대마도를 찾기도 했다.

“실제로 가서 보니 한국 쓰레기가 엄청 많더군요. 백령도에 중국발 쓰레기가 밀려온다는 사실은 많이들 알고 있지만, 그만큼 한국 쓰레기가 대마도에 간다는 것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책임이 있다는 거죠.”

양 작가는 한국에서 대마도로 흘러간 쓰레기로 ‘잊힌 통신사’란 작품을 만들어 대마도에서 서울 창덕궁까지 걸어오는 장면을 기록했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돌아오는 과거 행적을 한국의 쓰레기가 전해지고 돌아오는 방식으로 표현한 퍼포먼스다.
 

한국에서 대마도로 흘러간 쓰레기로 만든 작품 ‘잊힌 통신사’. 양 작가는 대마도에서 서울 창덕궁까지 작품과 함께 왔다.


해양쓰레기 줍는 작가

양 작가 고향은 제주도다. 작가가 되지 않았으면 어부가 됐을 거라 말할 정도로 바다에 대한 애정이 깊다. 초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미사가 끝나면 항상 성당 근처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어릴 때부터 자연과 참 가깝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감수성이 지금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나 싶어요.”

또 늘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어머니를 보고는 어릴 때부터 어떤 문제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없었다. 주변을 깊이 관찰하고, 할 수 있을 때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힌 것이다.

군대에서도 해안선 근무를 했던 양 작가는 바다 위에 떠다니는 것들에 주목했다. “한강 하구에 축구공이 떠오르면 비상상황입니다. 멀리서 보면 사람 머리 같거든요. 예전에 간첩이 지나가던 길이라 축구공 하나 때문에 전투 배치가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월드컵은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 평화의 상징인데 말입니다. 그렇게 군대에서 해양쓰레기를 통해 분단의 아픔·국가 간 이기주의·정치적 외압 등 여러 외부 요인들을 깊이 고민했습니다.”

결정적으로 대학교 3학년이 끝나가던 2007년 12월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성당 친구 권유로 봉사활동을 다녀온 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첫 작품은 2008년 ‘WHO’라는 텍스트에 기름 오브제를 넣은 2m 50㎝짜리 조형물이었다. 앞면에는 깨끗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뒷면에는 기름때를 덕지덕지 발랐다.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양준석(활동명 양쿠라) 작가가 2022년 설립한 '윤슬바다학교'. 동아시아 해양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다양한 분야 예술가들이 모여 환경에 대한 관심과 실천을 이끌어가고 있는 예술단체다.


윤슬바다학교

양 작가의 작품은 준비부터 뒷정리까지 제작하는 모든 과정에서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 삶이 담긴 결과물이다. 환경에 대한 그의 굳은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양 작가는 작품에서 그치지 않고 현재 거주하고 있는 대부도에 2022년 ‘윤슬바다학교’를 설립해 이런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윤슬바다학교’는 동아시아 해양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다양한 분야 예술가들이 모여 환경에 대한 관심과 실천을 이끌어가고 있는 예술단체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부도를 방문합니다. 캠핑도 하고 차박도 하죠.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을 좋아해서 오는 분들인데 쓰레기를 엄청나게 버리고 가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환경교육을 시작해보자 마음먹었습니다.”

반응은 뜨거웠다. 이론 교육과 함께 해양에서 수집한 물건들로 악기를 만들어 가족 단위로 연주회를 열었고, 청년들과 환경을 주제로 공동작품도 만들었다. 양 작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고 풀 수 있는 장은 거의 없다”고 했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겠지만, 환경에 대해서도 생태학자나 활동가 등 바라보는 시각이 참 다양합니다. 때론 완고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도 하고요. 큰 위기 앞에서 나오는 반응이라고 봅니다. 다만, 마음은 있지만 그 정도까지 용기가 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은 부드럽게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장을 마련해주니 시·철학·디자인·연기·무용 등 다양한 장르에 종사하는 분들이 환경이라는 주제 하나로 모였습니다.”

양 작가는 “각자의 능력도 뛰어나지만 표현하는 메시지가 정말 아름답다”며 “상상만 하면 거기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한 번이라도 표현하고 나누면 너무 쉽게 그 다음 행동으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가서도 자체 모임을 만들더라고요. 그렇게 조금씩 확산해 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전주 ‘그린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위해 카약을 타고 물의 시선을 담고 있는 양준성 작가.


시선

양 작가의 시선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는 9월 미국 LA에서 몬스터 전시가 잡혀 있고, 전주에서 열리는 ‘그린 르네상스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

“전주천에 있는 수많은 버드나무가 시민 동의 없이 벌목됐습니다. 홍수 예방이라고 하지만 보를 만드는 것을 보면 공감이 안 되는 현장이었죠. 물의 시선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바다로 흘러가는 게 물의 이치인데, 새만금에서 막혀버려요.”

양 작가는 물에서 30㎝ 정도 간격에 캠을 달고 직접 카약을 운전해 물의 시선으로 80㎞에 달하는 과정을 기록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거창한 이념을 실현한다기보다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대신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말입니다. 쓰레기와 환경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이 미치는 곳까지 가볼 생각입니다.”

그는 다음 행선지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정했다. 동아시아 해류를 관찰하는 것에서 나아가 더 넓은 해류의 흐름을 보기 위해서다.

“해양쓰레기는 국가 간에 어떤 관계를 맺고 있든 상관없이 전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내 모습부터 바라봐야 합니다. 그 시선으로 동일한 맥락의 메시지를 계속 전하다 보면, 한 번쯤 환경과 평화 같은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저는 성공한 겁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2024-07-10 오전 9:32:06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