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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익숙함이 주는 위험함 2024-07-10

칠레에 있을 때 살았던 본당들은 안전한 동네가 아니었다. 밤낮없이 마리화나 냄새를 어렵지 않게 맡을 수 있었고, 뉴스에서 여러 강도 사건으로 자주 이름이 등장하는 그런 동네였다. 길거리는 늘 더러웠고, 어두웠다. 그런데 또 막상 살다보면 그런 동네인지 모르고 살게 된다. 동네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공소에 다니기도 했다.


선교를 시작하고 첫 3년은 산티아고의 ‘푸엔테 알토’라는 구역에 살았다. 당시 집에는 경차 한 대밖에 없었기 때문에 걸어 다니는 일이 많았다. 살던 집에서 본당이나 공소를 가거나 혹은 집 축복이 있을 때면 대부분 걸어 다녔다. 그럴 때면 공소회장 내외가 늘 잔소리를 한다. 위험한데 왜 걸어 다니냐고 말이다. 자기들도 혼자 걸어다니지 않는데 될 수 있으면 차를 타고 다니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큰 위험을 느끼지 못했고 여전히 걸어 다니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두 번째 살았던 ‘마이포’라는 동네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데 퇴근 시간이라 지하철이 복잡했고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가는 버스를 갈아탈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우버를 잡아탔다. 우버 기사는 이라크에서 전쟁을 피해 이민을 온 사람이었고, 이미 20년째 가족들과 함께 칠레에서 살고 있던 우리 아버지뻘 되는 나이 지긋한 분이었다.


내가 지정한 목적지인 마이포의 본당으로 이동하면서 그분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진다. 고속도로를 나와 집에 다다르는 골목길로 접어들면서 기사분이 참았다는 듯 나에게 묻는다. “총각, 진짜 여기서 살아?” 내가 그렇다고 하니까 너무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빨리 이사가는 게 좋을 거야. 여긴 정말 무서운 동네야. 뉴스에 맨날 나오잖아”라고 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잽싸게 줄행랑을 친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자전거를 타고 공소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성당 옆 공터에서 종종 보던 청년들이 그날도 앉아있었고 그들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있었다. 그렇게 한 무리의 청년들이 권총을 장전하고 건너편 동네로 몰려가는 모습을 봤다. 익숙함 때문에 현실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지만 다시 보니 위험한 곳에 내가 있었던 것이다.


종종 우리가 겪는 일들도 이와 비슷하다. 내가 매일 생각 없이 죄를 짓고 있고, 또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나와 비슷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도 있고, 지금 내가 죄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서서히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내가 위험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익숙함은 그렇게 위험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현실을 살펴보고 빨리 변화할 수 있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익숙함과 편함에 잠식되지 않고, 깨어 살필 수 있는 신앙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3)”



글 _ 문석훈 베드로 신부(교구 비서실장)

[가톨릭신문 2024-07-10 오전 8:52:08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