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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다큐 ‘한국인 최양업’ 제작 에피소드(1) 2024-07-10

‘최양업 신부님은 어떤 분이셨을까?’


지난 3년 동안 최양업 신부님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가장 많이 가졌던 질문이다. 2021년에 오픈한 ‘한국인 김대건’은 이미 너무 많이 알려져 있었던 분이라 제작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반면 최양업 신부님의 다큐는 뚜렷한 구성이 떠오르지 않아 수없이 반복하며 생각에 잠기게 됐다. 김대건 신부님의 친구, 한국 두 번째 사제, 길 위의 사제, 땀의 순교자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만년 2인자인 것 같아 약간은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인터뷰에 응하실 분들을 섭외하고 형식적인 질문지를 작성하지만 정작 촬영할 때는 자유로운 대화로 진행하기 때문에 우선 내가 알아야 할 부분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분이 남기신 유일한 자료인 서한을 읽고 또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최 신부님의 지나친 겸손, 자기 비하가 화가 날 정도였다. 서한 끝 부분은 한결같이 ‘지극히 비천하고 순종하는 아들 토마스 양업 엎드려 절합니다’, ‘미약하고 쓸모 없으며 부당한 아들’, ‘가장 비천한 종’의 문구들이 나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래 겸손과는 거리가 멀어서일까.


최 신부님이 겸손하신 건 맞는데 이런 겸손함을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까 궁리하다가 그 겸손의 뿌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200년이 지난 현재 평소 겸손하다는 평을 많이 듣는 남편 안드레아에게 같이 다큐를 하자고 제안하며 서한집을 건네줬다. 처음에는 자신 없다고 발뺌하더니 간간이 서한집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드디어 충청도 멍에목성지와 배티성지에서 첫 촬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계곡에서 발을 담근 채 청주교구 양업교회사연구소 소장 이태종(요한 사도) 신부님과 대화하는 장면을 보며 계속 드는 생각은 내용보다 남편의 얼굴색이었다. 신부님은 훤한 얼굴인데 남편은 평소답지 않게 거무티티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촬영이 끝난 뒤 물어보니 일주일 전부터 한쪽 눈이 안 보인다고 했다. 걱정을 안고 서울로 돌아온 후 받은 모든 검사 결과에 의사는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검사에서 원인을 찾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일주일 뒤 최양업 신부님이 다녀가셨다는 문경 기도굴 촬영이 있었다. 한쪽 눈이 안 보이는 힘든 상황에 높은 산에 올라가야 했는데도 그것에 대한 불평은커녕 최양업 신부님 생각하면 힘들다고 할 수 없다며 환한 미소와 껄껄대는 웃음으로 주변을 편하게 해줬다. 어떤 상황에서든 불평하지 않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최양업 신부님을 본받으려는 그 모습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나 또한 다큐를 제작하는 동안 최 신부님의 겸손을 닮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글 _ 박정미 체칠리아(다큐멘터리 ‘한국인 최양업’ 감독)

[가톨릭신문 2024-07-10 오전 8:52:08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