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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5주일- 복음적 가난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 | 202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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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선택하시어 사도로 세우신 목적은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것이었습니다.(마르3,14이하 참조) 파견되기 전에 열두 제자들은 일정한 준비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있는데 그 핵심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머물면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놀라운 행적들을 목격하며 예수님을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그렇게 준비된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능을 주시며 파견하십니다. 그들에게 부여된 사명은 회개를 선포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고쳐주는 일, 곧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행하시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습니다. 증언의 합법적 효력을 위해서는 두 사람 이상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신명19,15 참조) 또한 복음 선포가 어느 개인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보다 실천적 이유로는 전도여행의 힘든 과정에서 서로 돕고 격려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스승이신 예수님 곁에 머물러 그분으로부터 받았던 뜨거운 사랑의 체험을 동료와 함께 나누고 기억하면서 사명 수행을 위한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8,20)고 말씀하신 예수님처럼 파견되는 제자들도 물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삶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 가난한 삶의 목적은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대한 믿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꼭 필요한 지팡이와 신고 있는 신발과 입고 있는 속옷 한 벌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신 이유도 믿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파견되는 이들에게 우선적인 것은 인간적 자질과 능력이 아니라 파견하는 분과의 인격적 만남 곧 그분에 대한 믿음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순례의 여정에 있는 교회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성령의 이끄심에 따르며 본래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복음적 가난의 정신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발적인 가난은 파견하신 분의 뜻에 따라 맡겨진 사명의 수행을 더욱 민첩하게 하도록 합니다. 가난의 덕을 실천하는 것은 파견된 이들을 겸손하게 하며 불필요한 일로부터 자유롭게 해줍니다.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면 그것에 대해서 신경 쓸 일이 많아져 본질적인 것에 마음이 무뎌지게 마련입니다. 특별히 교회의 성직자·수도자들이 앞장서서 이러한 복음적 가난을 실천해야 합니다. 교우들은 어떤 모습으로 복음적 가난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교회의 가르침은 재산의 소유권을 인정합니다. 정당한 방법을 통해서 많은 재산을 갖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웃을 위한 나눔을 실천할 것인지 아니면 오직 자신의 안락만을 위할 것인지, 즉 그 재산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그 결과는 매우 상이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영성생활의 차원에서 가난의 실천은 우리 삶의 중심이 예수님인지, 아니면 세상 것인지를 식별케 하는 기준이 됩니다. 만일 소유한 재산에 마음을 온통 빼앗겨 그 재산에 자신의 미래를 걸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분명 신앙인의 길이 아닙니다. 반면에 예수님과 복음 진리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한 사람의 내면을 차지한다면 더 올바른 시선과 자유로운 선택으로 소유한 재산을 사용하여 많은 선행을 이룰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는 예수님 아닌 다른 것에 삶의 중심 자리를 내줄 수 없습니다. 길을 떠날 때 최소한의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는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을 거듭 요청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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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7-10 오전 8:12:05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