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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하며 서로 섬기고 일치하는 삶을 2024-07-10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은 바오로 사도의 옥중 서간으로 바오로의 인간미가 가장 엿보이는 서간이다. 필리피서는 그리스도의 비움을 본받아 겸손하고 일치된 삶을 살아가라고 권고한다. 사진은 바오로 사도가 리디아에게 세례를 준 곳으로 추정되는 지각티스 강변 세례터.


필리피는 고대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의 한 도시였습니다. 기원전 358~357년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이 도시를 건설하고 자기 이름을 따서 ‘필리피’라 했습니다. 기원전 147년 로마인들은 이 도시를 점령해 속주로 만들었습니다. 고대 로마사에서 필리피는 기원전 42년 공화정 말기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군대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했던 브루투스·카시우스의 군대와 2차례 전투를 치른 곳으로 유명한 곳이지요. 이 전쟁 이후 기원전 31년 고대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이 도시에 퇴역 군인들을 이주시켜 여러 특권을 부여해 ‘콜로니아’ 곧 식민 도시로 건설했습니다.

필리피는 유럽과 소아시아를 잇는 상업 중심지요 군사 요충지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2차 선교 여행(50~52년) 때 지중해 연안도시 트로아스에서 마케도니아 사람 한 명이 나타나 자신들을 도와달라는 환시를 보고 실라스와 티모테오와 함께 샤모트라케·네아폴리스를 거쳐 필리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고 신앙 공동체를 세웁니다.(사도 16,11-40) 이로써 필리피는 유럽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인 곳이 됐습니다. 당시 필리피에는 유다인들이 많이 살지 않아 시나고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성 밖 지각티스 강가에서 안식일 기도 모임을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곳에서 설교해 유다인 몇 사람을 개종 입교시켰습니다. 그들 중 소아시아 티아티라 출신의 자색 옷감장수 리디아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바오로 사도 일행을 자기 집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래서 리디아의 집은 필리피 교회의 요람이 됩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바오로 사도는 점 귀신 들린 하녀에게서 귀신을 쫓은 일로 주인에게 고발돼 감옥에 갇혔다가 기적처럼 풀려나 필리피를 떠나 테살로니카로 내려갑니다. 필리피 신자들은 또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감옥에 갇혔을 때 에파프로디토스를 보내 그의 옥바라지를 하게 했습니다. (필리 2,25; 4,18) 이 일로 필리피 교회는 여느 지역 교회보다 바오로 사도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후 몇 차례 마케도니아를 거쳐 필리피 교회 신자들을 만납니다.(사도 20,1-6; 1코린 16,5; 2코린 2,13; 7,5) 바오로 사도는 늘 자기 손으로 생계비와 선교비를 마련해 선교 여행을 다녔지만 가장 친밀한 필리피 교회 신자들의 물질적 도움만은 기꺼이 받았습니다.(필리 4,15-16; 2코린 11,8-9)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옥바라지를 하던 에파프로디토스가 중병에 걸리자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그간 도움을 준 필리피 신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씁니다.(필리 2,25-30) 바로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필리피서) 입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Φιλιππησιουs’(프로스 필리페시우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Philippense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필리피서는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과 함께 바오로 사도의 ‘옥중 서간’으로 분류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에페소, 카이사리아, 로마에서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필리피서를 쓴 것으로 추정합니다. 자신이 석방되면 필리피로 직접 가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1,25-26) 성경학자들은 또 필리피서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ㆍ둘째 서간보다 조금 앞서 쓰였다고 합니다. 이에 필리피서는 대략 56~57년께 쓰인 것으로 추정합니다.

필리피서는 모두 4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성경학자 중에는 필리피서가 한 번에 쓰인 것이 아니라 바오로 사도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짧은 친서 몇 편을 한 서간으로 편집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필리피서를 ‘감사의 편지’(1,1─3,1; 4,10-23)와 ‘이단을 경고하는 편지’(3,1─4,9)로 나누기도 합니다.

필리피서는 바오로 사도가 감옥에서 쓴 서간이지만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던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기에 바오로 사도의 서간 가운데 가장 인정이 넘치는 편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친교를 통해 가까이 있다고 인사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겪는 시련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복음 선포에 큰 이익이 되기 위함이라고 강조합니다. 곧 자신을 철저히 낮춤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고백합니다.(1,12-26)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분열되지 말고 화목과 일치를 이루길 권고합니다. 자신을 낮추어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 그리스도를 본보기로 겸손하고 서로 섬기는 삶을 살 것을 당부합니다.(2,6-11)

그러면서 바오로 사도는 선동자들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경계하는 선동자들은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ㆍ둘째 서간에서 반박한 영지주의 영향을 받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은 할례와 율법 준수를 요구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시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들 선동자를 “개들”, “나쁜 일꾼들”(3,2)이라고 힐난하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닐 것을 권고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수난과 부활에 동참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갈 것을 당부합니다.(3,8-16)

 
리길재 선임 기자 teotokos@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2024-07-10 오전 7:52:03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