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녀를 둔 엄마들과 독서모임에서 다니엘 핑크의 「후회의 재발견」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이자 비즈니스 사상가로 꼽히는 다니엘 핑크의 이 책은 원서의 제목이 ‘후회의 힘’이고 번역서 역시, 제목처럼 ‘후회라는게 알고 보면 우리의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날 모임에서 우리는 ‘후회의 역설’에 대한 열띤 토론보다 ‘후회’에 대한 절절한 공감과 위로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무래도 사춘기, 청소년 자녀를 양육하면서 생애 전환기를 보내는 중년의 회원들이다 보니 분위기가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눈물, 콧물로 공감하며 서로를 위로했던 이야기들은 뻔하게 상상되듯이 양육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자녀’와의 갈등, 그로 인한 후회, 여기에 자연히 따라오는 배우자에 대한 선택, 나아가 선택할 수조차 없었던 내 ‘부모’라는 환경. 그리고 지금 이렇게 살고있는 ‘나’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후회에 대한 성토 가운데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 즉 소통방식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참가자 A의 아들은 중학교 3학년부터 또래에 비해 좀 늦게 사춘기가 시작됐는데요, 격렬하게 흔들리고 나니 어느새 대학 입시가 다가오고 있었지요. 엄마인 A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그동안 그렇게 지낸 거 너도 후회하지?”
모름지기 A의 반응을 봐서는 아들이 속도 꽤나 썩였던 모양입니다. 엄마 입장에서는 아들이 당연히 코가 쏙 빠져서 반성하며 후회한다고 말해야 했겠지요. 어쩌면 속으로는 ‘네가 사람이라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들의 반응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요.
“후회 안 하는데요!”
엄마는 아들의 그 한마디가 너무 큰 상처였다고 합니다. 꽤 오랜 시간, 상처를 안고 지내다가 얼마 전, 아들과 그때의 이야기를 했는데, ‘후회’에 대한 서로의 생각이 달랐음을 알고 뒤늦게 오해를 풀었다고요.
엄마의 입장은 아마도 그랬을 겁니다. ‘지난 시간 너의 행동은 너 스스로 생각해도 잘못됐고, 부모에게도 미안하며, 뼈 아프게 그 시간을 반성하고 있기에 앞으로는 정신 차리고 정말 열심히, 잘 해 볼 거지?’
그런데, 아들이 ‘후회 안 한다’니 기가 찼겠지요. 자식 문제로 속앓이를 좀 한 부모들은 당연히 보상심리가 있습니다. 속 썩인 만큼 더 잘 되는 것으로 보상받고 싶은 마음은 너무도 당연하고, 당장에는 ‘잘못했어요, 미안해요’라고, 적어도 말이라도 한마디 해주는 것. 조금 더 바란다면 ‘앞으로 잘하겠다’는 다짐으로 부모를 안심시켜 주는 것. 그 정도만 보여줘도 부모는 가슴에 얹혔던 응어리가 쑥 내려가는 심정일 겁니다. 과한 바람도 아닐 텐데, 엄마 입장에선 서운할 수 있지요. 그런데, 아들은 ‘후회’에 대한 함의가 달랐던 겁니다.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해도 나는 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제 와서 그 시간을 후회해 본들 도움 될 것도 없으며, 후회하면서 보내기엔 시간이 아깝고, 그래서 나는 후회 속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 뜻이었다고 합니다.
엄마가 아직도 그 시간을 붙들고 아파하며 ‘후회한다’는 말로 위로받고 싶어할 때, 아들은 이미 그 시간을 훌쩍 벗어나 앞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겁니다. 아들은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이미 미안했고, 자기가 잘못했던 걸 아니까 서둘러 앞을 향해 달리기 바빴던 것입니다.
다니엘 핑크는 ‘인간만의 독특한 능력인 성찰의 힘이 있기에 후회란 감정도 느끼는 것이다. 후회는 좌절에 머물러있게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과정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후회는 우리가 ‘잘 사는 삶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고 하지요. 따라서 후회를 줄이는 ‘후회의 최소화’가 아니라, 삶을 개선하는 긍정적인 도구로 ‘후회의 최적화’를 강조합니다.
엄마 A도 자신의 아픈 양육의 시간을 돌아보며 후회의 최소화보다는 그 시간을 딛고 후회의 최적화, 다시 말해 보다 성숙한 양육자로 거듭 나야겠지요.
다만, 상처받은 마음은 저절로 괜찮아질 수 없습니다. 기대했던 모습의 아들을 잃어본 상실과 슬픔의 감정은 저절로 좋아지지가 않아서 누군가 달래주고 위로해 줘야 합니다. 아들에게 ‘후회하지?’라는 말로 확인받기보다는 ‘지금 네가 이렇게 노력하고 잘 해줘서 엄마는 참 좋구나. 고맙다’라는 말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고울 테니까요. 그게 바로 엄마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요?
설령 사춘기 앓이가 아직도 진행 중인 아이가 여전히 아픈 소릴 내뱉는다면, 그럴수록 더 담아두고 새겨 둘 필요가 없습니다. 한창 사춘기인 아이들이 함부로 내뱉는 말은 정말 뼈아프도록 모질 때가 많지요. 하지만, 그 시기를 지난 아이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땐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지금은 알아도 그땐 몰랐던 것이죠. 하지만 부모는 반댑니다. 사춘기 아이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될 필요 없고, 아이 말 한마디에 죽고 살고 할 필요가 없음을, 지금은 몰라도 이 다음엔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부디 당신의 아이와 안녕하기를 온 마음으로 빌어봅니다.
글 _ 최진희 (안나)
국문학을 전공하고 방송 구성작가로 10여 년을 일했다. 어느 날 엄마가 되었고 아이와 함께 가는 길을 찾아 나서다 책놀이 선생님, 독서지도 선생님이 되었다. 동화구연을 배웠고, 2011년 색동회 대한민국 어머니동화구연대회에서 대상(여성가족부장관상)을 수상했다. 휴(休)그림책센터 대표이며, 「하루 10분 그림책 질문의 기적」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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