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떠나 서울 본부로 온 지도 벌써 2년 가까워 온다.
제주에 있을 때 맡았던 임무는 제주도 분원 원장이었다. 함께 사는 수사님은 바오로 서원 책임을 맡으셨기 때문에 매일같이 서점에 출근하셨지만, 나의 경우에는 원장의 소임이라는 것이 딱히 실무를 보는 일은 아니어서 사무실에 정기적으로 출근하는 일이 없는 상황이었다. 마당에서 풀 깎고, 청소하고, 장을 보는 등 집안 살림이 주된 업무였다.
그래서 제주 교구 신부님이나 신자분들이 “신부님은 제주도 수도원에서 하시는 일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그냥 수도원에서 살림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사람들이 “아, 그럼 특별히 하시는 일이 없고 좀 한가하시겠네요?” 하고 물어보고, 나는 “그렇죠, 뭐” 하고 대답했다.
그 후 이 본당 저 본당에서 미사 집전을 해달라, 고해 성사를 도와달라는 부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딱히 하는 일 없이 한가하다고 말했으니 부담 없이 이런저런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점점 더 많은 곳에서 일들이 들어왔다. 신부님들의 부탁뿐만 아니라 수녀님들도, 신자분들도 이것저것 부탁을 해왔다. 수녀님들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본당 신부님께 고해 성사를 보기가 껄끄러우시니 나에게 고해 성사를 보러 오셨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두 분 정도 오셨는데, 나중에는 용하다고 소문이 났는지 점점 더 많은 분이 오셨다. 신자분들도 마찬가지였다. 본당 신부님들이 많이 바쁘셔서 부탁드리지 못한 일들을 내가 수도원 신부로서 한가하게 지낸다고 소문이 나서 그런지 이런저런 부탁들을 많이 해오셨다.
일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어떤 때에는 바빠서 도와드릴 수 없다고 거절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럴 때면 사람들이 “아니, 특별한 소임도 없으시다면서 뭐가 그렇게 바쁘세요? 에이, 그러지 마시고 시간 좀 내주셔요”라고 말한다.
아닌데, 진짜 바쁜데…. 그렇다고 사무실이 있어서 매일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볼 땐 매일 수도원 안에 있으니 증명할 방법은 없고…. 그래서 사람들이 나 같은 사람들을 두고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말하는가 보다.
서울로 이동되어 온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다. 운명인가 보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
1991년 성 바오로 수도회에 입회, 1999년 서울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선교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사제서품 후 유학, 2004년 뉴욕대학교 홍보전문가 과정을 수료했으며 이후 성 바오로 수도회 홍보팀 팀장, 성 바오로 수도회 관구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그리스도교 신앙유산 기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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