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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노년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 2024-0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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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모습은 질병과 장애, 노인돌봄과 연관돼 암울하게 느껴지므로 상상을 꺼리게 된다. 세대 갈등과 노인혐오 범죄가 증가한 고령사회 배경의 일본 영화 ‘플랜 75’(2024)에서 정부는 7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안락사 신청을 받는다. 노인들에게 죽음을 정리할 시간을 주고 마지막 삶을 즐길 수 있도록 위로금과 상담까지 제공한다. 가난한 노인들은 건강이 악화되고 노동의 기회가 적고 사는 것이 힘들다며 죽음을 선택한다. 그러나 삶의 질을 언급하며 안락사를 권유했던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비용을 절약하고자 시체 유기 등을 자행한다. 상상에 기초하지만 고령사회에서 있을 법한 공포스러운 상황을 재현했다. 현실 고령사회에서도 죽음과 노인돌봄은 삶과 분리되고 비가시화돼 있다. 한국 사회에서 노인요양보험제도가 실시되고 노인들은 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가족, 특히 자녀들은 노인돌봄의 일차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건강하게 장수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노인도 많지만, 만성질환에 시달리거나 치매나 와병 상태로 노년을 보내기도 한다. 자율성과 독립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액티브 에이징(Active Ageing)은 더욱 부각되지만, 나이 듦의 흔적을 지우는 노년의 삶은 젊음의 모방이나 연장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럼에도 미디어에서는 다양한 노년의 삶을 재현한다. ‘꽃보다 할배’ 시리즈는 경험과 연륜을 가진 멋진 노인 남성 배우들이 등장해 젊은이들에게 조언함으로써 노년 역할 모델을 제시했다. 드라마에서 젊은 주인공의 조부모로 나오던 배우들이 영향력과 카리스마 있는 조연·주연을 맡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남성들은 젊은 세대에게 선배로서 좀 더 다양한 노년 역할 모델을 제공하는 반면, 여성들은 할머니, 모성의 전형으로 따뜻하고 푸근한 정서적 측면이 강조되거나 고운 할머니로 한정된 역할 모델을 보여 준다. 이러한 역할 모델은 남성보다 다원적이지 않기에, 여성들이 자신의 노년 역할 모델을 선배 여성들에게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고령사회에서 노인 여성의 역할 모델은 다양하게 제시된다. 나쁜 시어머니나 자상한 친정 엄마 등으로 재현돼 왔지만 노년에도 활동하며 다양한 모습의 할머니, 공적 역할로 재현되는 노인 여성 배우들이 있다. 노인 여성 유튜버 크리에이터들이 인기를 얻고 젊은 여성들과 소통하면서 역할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배우 윤여정은 미국 오스카상 여우조연상이라는 수상의 명예와 함께 노년의 역할 모델로 손꼽힌다. 그는 한동안 주목받지 못한 배우였지만 성실하게 연기를 해왔다. 영어를 잘하고 젊은 감각을 지니고 소통의 기술을 발휘한다는 평가도 받는다. 배우 나문희와 김영옥은 오랜 연기 경력을 기초로 TV와 영화, 연극 등 활발한 연기 활동을 하고 연예·오락 프로그램에도 도전하고 있다. 그들은 할머니 역할을 주로 해 왔지만 획일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위로와 치유, 도전의 아이콘이 된다. 여성의 인물사를 기록하거나 노인 여성의 삶을 살펴보는 것도 노인 여성의 역할 모델을 창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2024)는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일하는 한국 최초의 여성 조경가 정영선의 삶을 담아낸다. 그는 자신을 자연과의 중개자라 생각하며 삭막한 도시 환경에 치유와 사색의 공간을 구성하고 후손에게 물려줄 생태적 환경을 조성하고자 헌신해 왔다. 다큐멘터리 ‘물꽃의 전설’(2023)에는 젊은 해녀에게 자신의 물질 노하우를 가르치는 노년 해녀 현순직이 등장한다. 노년은 느림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면서도 질병과 장애를 수용하고 노인돌봄, 의료결정, 죽음 등을 준비하는 단계다. 가톨릭신자로서 노년 역할 모델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다양한 역할 모델을 통해 노년을 설계한다면 노년은 가지 않은 미지의 길이면서도 즐거운 도전이 될 것이다. 글 _ 이동옥 헬레나(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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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6-26 오후 3:52:15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