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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소중한 보물들」 2024-06-26

이해인 수녀(클라우디아·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수도회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은 1964년이다. 인생의 노을빛 여정에서 올해 수도회 입회 60년을 맞은 이 수녀가 마음으로 간직했던 그간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펼쳐놓았다. ‘이것저것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며 쓴 일기, 메모, 칼럼 그리고 신작 시 열 편이 공글려 엮여있다.


5부로 나뉜 책은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서간문, 법정 스님과의 일화, 신영복 선생의 붓글씨 등 지금은 하늘나라로 떠난 인연에서부터 초등학생에서 90대 할아버지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며 나눈 덕담, 편지와 수많은 작은 선물들에 얽힌 사연들을 담고 있다.


“Suscipe me, Domine(주님, 저를 받아 주소서). 오월의 그 찬란한 바다 물결. 장미 속에 파묻힌 사랑의 여인들. 바들바들 떨려오는 환희의 오늘. 주여 당신은 제게 이렇게도 크게 갚아주시는 것입니까? 이제부터 나는 클라우디아라고 불린다. 내 생애 최고의 생일. 제일 기쁜 날.”(177쪽)


1968년 5월 23일 첫 서원 날에 쓴 일기에서는 하느님께 삶을 봉헌하는 떨림이 느껴지고 “나도 수녀님처럼 생각을 아름다운 글로 표현할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이 주신 특은이고,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167쪽)라고 김 추기경이 보낸 엽서 글은 그의 환한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이외에도 이 수녀는 고(故) 장영희(마리아) 교수가 강의실에서 쓰던 하트 모양 시계를 소개하며 ‘사랑’과 ‘시간’에 대한 상념을 나누고, 종신서원을 기념해 수녀회 내부용으로 인쇄했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이야기도 들려준다. 각 사연에는 정멜멜 사진작가가 2022년 11월부터 2024년 4월까지 이 수녀와 동행하며 찍은 사진이 곁들여져 있다.


‘시인’으로서의 몫에 대해 이 수녀는 “좋은 시인은 삶에 시를 채워 남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언어의 천사다. 사제처럼 아름다운 노력을 하는 삶 속 예술인이다. 남이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예민하게 관찰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나는 성당에서, 침방에서, 정원에서 그리고 글방에서 시를 빚는다. 나는 한 편의 시처럼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끝말’을 통해 “어느 날, 이 세상을 떠나면 ‘민들레, 흰 구름, 흰 나비, 바다를 좋아한 한 수녀가 부산 광안리 어딘가에 해인 글방을 차려놓고 시를 쓰며 문서선교를 했지. 종파를 초월해 많은 이와 교류하고 우정을 나누며 사랑을 받았지’ 정도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고 한 이 수녀는 “시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수행하듯 꾸준히 시를 쓰다가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될 작은 수녀! 그 수녀가 바로 나였으면 한다”고 했다.


「소중한 보물들」은 인생의 사계절이 오롯이 느껴지는 글을 읽으며 사람과 사랑이 무엇인지 곱씹어 볼 수 있게 한다. ‘작은 위로와 작은 사랑’이 얼마나 귀한지, 또 흘러간 사람의 흔적이 얼마나 보배로운지 느껴보는 일임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에게 그리고 세상에 소중한 것은 무엇일지 되물어 보게 하는 책이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06-26 오후 1:52:15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