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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진길, 선교사 영입과 조선대목구 설정에 핵심적 역할 2024-06-26
윤영선 작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출 생 | 1791년 서울

순 교 | 1839년(49세) 서소문 밖 / 참수

신 분 | 회장, 역관




박해 속에서도 교황께 선교사 파견 요청

매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가장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보낸다. 인류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명령을 실현하기 위하여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큰 무게를 짊어진 이가 교황일 것이다.

우리와 교황과의 극적인 만남은 2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가혹한 박해 속에서도 교우들은 교황께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 사제를 요청했다. 사제를 열망하는 조선 교회의 간절함에 어느 누가 감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정하상과 유진길 등 조선의 신자들이 보낸 절절한 편지는 마침내 교황청에 이르러 교황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1831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조선대목구를 설정하고 영속적으로 사제를 파견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적같이 전개된 조선대목구 설정의 바탕에는 유진길 같은 교우들의 피나는 열정이 있었다. 몸과 마음·영혼까지 바친 유진길의 노고가 기적의 바탕이지만, 사실 그에게는 부르심을 받는 과정부터 신비이고 기적이었다.



진리 탐구 과정에서 스스로 천주교에 입문

유진길은 누군가로부터 전교를 받은 것이 아니고 인생의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천주교에 입문했다. 대대로 역관을 지낸 가문에서 태어난 유진길은 어려서부터 인간과 세상의 기원 같은 근원적 물음을 던지곤 했다. 그러던 중 「천주실의(天主實義)」의 내용이 적힌 종이를 우연히 접하고 깊은 울림을 경험하였다.

이후 교리를 공부하며 천주교 신앙의 진리를 깨닫고 믿게 되었다. 1824년 동지사의 역관이 되어 베이징에 가게 된 유진길은 아우구스티노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세례와 성체를 받은 그에게 사제 영입은 더욱 절실한 소명이 되었다. 1825년 정하상 바오로 등과 함께 사제를 보내달라며 교황께 보낸 편지는 조선의 구원을 위한 위대한 희생이고, 기적을 이루는 재료가 되었다.

1839(기해)년 박해로 체포된 유진길 아우구티노는 혹독한 고문 끝에 9월 22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로 순교했다. 한 달 후 성인의 아들 유대철 베드로 또한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되었는데, 그는 한국 천주교 103위 성인 중 가장 나이 어린 성인이다.



순교 한 달 후 어린 아들 유대철도 순교

알록달록 은행잎과 단풍잎이 온 산을 단장한 천진암성지 광암성당 미사에 참여한 후 성인의 묘소에 참배했던 기억이 있다.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천주실의」 책 한 조각의 글귀를 우연히 접하고 신앙을 갖게 된 것은 하느님이 성인을 부르신 것이고, 성인 또한 오늘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환희의 춤을 추고 있었다. 이 땅에 천주교의 시작을 알리고 하느님 나라의 빛을 밝히고자 했던 선한 미소를 지닌 성인의 모습이 느껴졌다. 청원서를 쓰고 계신 성인의 실루엣 주변으로 진리의 바람과 지혜의 물길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듯하였다.
 

※6개월간 코너를 연재해주신 윤영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06-26 오전 9:52:17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