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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키를 매일 재면 안 자란다 2024-06-26

어릴 때, 키가 얼른 크고 싶었다. 반에서 아주 작은 편도 아니었는데, 저만치 뒷자리에 앉은 친구를 보면 정말 부럽기도 했었다. 듬직해 보이고 심지어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키가 얼른 자라고 싶은 마음에 무엇을 먹어야 키가 빨리 크냐고 물었더니, 어머니 여 여사는 콩나물을 많이 먹으라고 한다. 콩나물이 쑥쑥 자라니 키가 크는데 좋지 않겠냐며 말이다. 그러나 콩나물을 그렇게 많이 먹어도 봤지만 결국 고만고만한 키가 되었다.


암튼 그런 키가 크고 싶은 어린 시절에 대부분 집에는 벽마다 아이들 키를 표시해 놓은 눈금들이 하나씩 있었다. 물론 우리 집에도 있었다. 자그마치 3명의 사내아이의 키가 표시돼 있었다. 조급해서 그런지 정말 수시로 키를 재보고 표시하고 안달이 났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여 여사께서 한마디 하셨다. “그렇게 맨날 재고 있으면 자랄 것도 안 자라”라고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는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조바심이 사라지고 한참 뒤인 이제는 알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이라지만. 하루에 자라봐야 얼마나 자라겠는가? 어제와 달리 하룻밤 사이에 몇 센티미터가 쑥 자라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매일매일 키를 재는 것은 조바심과 불평만 지닌 채 살아가게 할 뿐이다. 결국 드라마틱한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낙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우리의 일상과 신앙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조바심을 낸다고 당장 큰 성과를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키를 매일 키를 재고 있는 아이처럼 그렇게 삶을 재고 또 재고 있기 때문이다. 성적을 올리려면 벼락치기가 아니라 꾸준히 공부해야 하고, 기술을 습득하려면 여러 번의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또한 신앙을 단단하게 만들려면 꾸준히 기도하고 성사에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순교자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 채 제풀에 지쳐 쓰러지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시루에 잘 불린 노란 콩을 넣고 검고 두툼한 천으로 덮어둔다. 그리고 하루 몇 차례 물을 줄 때를 빼고는 절대 열어보지 않는다. 빛을 받으면 콩나물이 아니라 푸른 쑥대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물을 주는 어느 날 천을 열어보면 하얀 줄기가 내려있고, 어느새 쑤욱 자라있는 콩나물을 보면서 감탄한다. “그새 이렇게 자랐네”하면서 말이다. 한 일이라고는 매일 꾸준히 물을 주는 일이 다였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꾸준히 물을 주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일을 만드는 것이었다. 기적과 같이 말이다. 단단한 콩이 부드럽고 싱싱한 콩나물로 환골탈태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신앙도 우리 삶도 그렇게 꾸준히 해야 한다. 들춰보고 재고 비교하고 할수록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먼저 지쳐 쓰러진다. 다만 묵묵히 오늘도 내일도 나의 삶에, 나의 신앙에 물을 주듯 하루를 살아내는 것, 내가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해내는 것부터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이만큼이나 자라있는 자신을 보게 되고, 또 보다 성숙해 있는 자신의 믿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글 _ 문석훈 베드로 신부(교구 비서실장)

[가톨릭신문 2024-06-26 오전 9:32:13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