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운(?)을 타고났나 보다.
세상눈으로 보면 그야말로 쓰잘데 없는(전라 방언) ‘장’ 직이 여럿이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보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럴때면 관운 때문이라고 답한다.
본당에서 사목회장직을 맡고 있을 때의 일이다. 금년 우리 본당의 사목 방향을 ‘삼조 운동’으로 하자고 제안을 했다. 신부님도, 사목위원들도 ‘그게 뭔데?’라며 의아해했다.
① 좋게 보기
② 좋게 생각하기
③ 좋게 말하기
세 가지의 ‘좋게’를 실천하여 긍정적인 사고를 갖자는 취지의 설명에 모두 동의했다. 공지 시간에 전 교우에게도 말씀드려 공감을 얻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입을 하나만 마련해 주신 것은 좋은 말을 하는 동안은 나쁜 말을 할 수 없으니 좋은 말을 많이 하자”는 익살에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교사의 가장 힘든 업무 중의 하나가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일이다. 학기 말에 가까워 작성하려면 개별 학생에게 적합한 말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숙고 끝에 찾아낸 생각이 삼조 운동이다. 평소에 학생의 생활에서 좋은 점이 발견되면 즉시 교무 수첩에 기록하여 자료로 한다.
어느 날 L군이 군복 차림으로 찾아왔다. 평소와는 달리 어둡고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다. 사연인즉 군에서 선생님이 써주신 생활기록부에 행동 발달상황이 좋지 않아 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즉시 행정실로 찾아가 원본을 보았다. “명랑하고 예절 바르며…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이다” 등등. L군은 놀라며 말했다. “선생님! 죄송합
니다. 선생님께서 그러실 리가 없다고 행각하면서도 의심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난 C군의 아버지께서 오셨다. C군이 학생 운동을 하다가 검찰에 넘겨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고3 담임 선생님께서 함께 가시어 담당 검사에게 선처를 부탁해 주시면 크게 도움이 되겠다고 했다.
언뜻 생각나는 것이 생활기록부였다. 학업성적도 좋은 편인데다 행동 발달상황도 삼조 운동 정신으로 썼으니 물론 좋았다. 급히 사본을 만들어 담당 검사를 찾아가 내밀면서 말씀드렸다.
“보시는 대로 성적도 우수하고 성실히 생활하던 모범 학생이었습니다. 선처해 주시면 저도 C군에게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잘 지도하겠습니다.”
평생을 두고 보아야 할 생활기록부이다. 어쩌면 장래를 좌우하기도 할 생활기록부이다. 삼조 운동의 정신에 따라 최선을 다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나의 소신이다.
글 _ 정점길 (세례자 요한, 의정부교구 복음화학교 교장)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 38년 동안 교직 생활을 했다. 2006년 3월 「한국수필」에 등단, 수필 동호회 ‘모닥불’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가톨릭 사회복지회 카리타스 봉사단 초대 단장, 본당 사목회장, 서울대교구 나눔의 묵상회 강사, 노인대학 강사, 꾸르실료 강사, 예비신자 교리교사, 성령기도회 말씀 봉사자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의정부교구 복음화학교의 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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