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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외길, 우리 땅·농산물을 살리는 사람들 2024-06-26

우리농 상임대표 안영배 신부(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안동교구 솔티분회 회원들이 유기농 감자를 수확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교회는 도·농 공동체 활동과 창조질서 보전활동이라는 두 기둥을 축으로 우리 사회 전체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사회 복음화에 정성을 기울일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94년 6월 29일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이하 우리농)가 발표한 창립 선언문이다. 당시 우루과이라운드(UR)로 수입 농산물의 유입 문턱이 대폭 낮아지면서 농촌 경제 악화와 수입산 유전자조작(GMO) 식품으로 건강까지 우려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교회는 그런 배경을 안고 우리 농촌이 생산하는 건강한 먹거리를 도시 사람들이 구매할 수 있는 통로로서 우리농을 설립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생명의 길, 자연 질서 회복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생명의 길을 걷고 있을까.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그 가치가 보존될 수 있을까. 우리농 설립 30주년을 맞아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우리농 상임대표 안영배 신부가 농민들과 함께 땅을 일구고 있는 안동교구 솔티분회를 찾았다.


 

 

우리농 상임대표 안영배 신부(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안동교구 솔티분회 회원들이 수확한 제각기 다른 크기의 유기농 감자를 들고 버려지는 ‘작고 못생긴 감자’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버려지는 작고 못생긴 감자들

기자가 방문한 날은 감자 수확 시기. 솔티분회 총무 이재민(비오)씨는 기자를 보자마자 버려진 자그마한 감자를 들어 올리며 “크기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밭에 버려진다”고 토로했다.

“딱히 방법이 없어요. 소비자들은 크고 잘생긴 놈을 좋아하거든. 사람은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더불어 사는데, 왜 유독 감자는 조금 못생기고 작다는 이유로 버려지는지?.”

같은 땅에서 같은 정성을 쏟아 얻은 작물을 수확하지 못한 아쉬움에 터져 나온 한숨이다. 이씨는 손에 꼭 쥔 작은 감자를 한동안 내려놓지 못했다.

분회 농민들의 한숨이 유독 깊은 이유는 유기농법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유기농법에만 그치지 않고 땅을 살리는 생명농업을 지향한다. 이날도 뙤약볕 아래에서 안 신부와 분회 농민들은 크든 작든 정성을 가득 들여 키운 감자를 수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암송아지 입식운동도 우리농의 대표적인 유기농법이다. 도시 본당 신자들이 기금을 모아 농가에 암송아지를 보내고 사육비를 지원한다. 농민들은 농사 부산물로 만든 자급 사료를 송아지에게 먹여 키우고 소똥은 다른 부산물과 섞어 퇴비로 사용한다. 이를 ‘경축순환농법’이라 한다. 감자도 이런 과정에서 생산돼 도시 신자들과 직거래를 통해 식탁에 올라간다. 이런 수고를 감당했기에 버려지는 작은 감자 한 알에도 쉽사리 눈길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안동교구 솔티분회가 유기농으로 일군 감자밭.

 

안동교구 솔티분회가 유기농 수확한 감자들.

 

 


위기의 농가 지키는 가톨릭농민회

자연을 회복하고 땅을 살리겠다는 신념 하나로 이어오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농약을 치지 않고 직접 손으로 풀을 매기 때문에 일손은 늘 부족하다. 농촌에 사람이 없다보니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일한 버팀목이다. 하지만 치솟는 인건비에 이마저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다. 김봉준 분회장은 “땅 살린다는 고집 하나로 버티곤 있지만 막막한 심정”이라고 전했다.

거기에 기후위기까지 덮쳤다. 기후위기의 피해가 가장 큰 곳이 바로 농가다. 신념과 기술, 열정으로 관행농 수확량 수준까지 올렸지만, 매년 일어나는 자연재해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김 회장은 “비가 많이 와도 문제다. 봄에 비가 너무 자주 와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았다”며 “정작 한참 굵어져야 할 시기에 가뭄이 들어 밭이 다 갈라졌다.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바라볼 수 있는 건 하늘뿐이다. 한해 농사가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이들이 버틸 수 있었던 힘은 공동체에 있다. 솔티분회는 1989년 설립 초기부터 생산품목과 방식을 통일하고, 품앗이로 공동 생산하는 전통이 있다. 분회마다 특징이 있지만, 기계까지 공동으로 구입하고 함께 작업하는 일은 드물다.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안 신부가 곁에서 “멍청하니까 그렇게 오래 함께했죠”라고 농담을 건네자 솔티분회 김회수씨는 “진짜 그렇다”며 “어느 순간에 누구 한 명은 꼭 져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안영배 신부가 안동교구 솔티분회 유기농 감자를 수확하고 있다.

 

 


우리농 30년

우리농 운동도 자연에 순응하자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안 신부는 “우리농은 1994년 농산물 수입 개방의 전면화 국면 아래 시작됐지만, 교회는 당시 이에 그치지 않고 자연 질서와 생태 질서를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기후위기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는 지금 상황을 비춰보면, 시대를 앞서 방향을 설정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목표는 하나의 공동체였다. 도시 교회와 농촌 교회, 도시 소비자와 농촌 생산자가 연대해 생활양식과 생명 농산물을 나누면서 공동체 세상을 이뤄보자는 것이다. 서울대교구를 시작으로 전국 각 교구에 운동추진기구가 설립됐고, 한국 전체 교회가 참여하는 조직적 기반도 갖추게 됐다. 이에 우리농은 다양한 형태의 도시와 농촌이 함께하는 교류와 만남, 도시 본당 내에 농산물 나눔터를 개설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이런 노력은 ‘농업·농촌·농민’의 가치를 드높이고 농업 살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고양시키는 계기가 됐다. 또 ‘생태 사도직 운동’으로서 교회 운동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생태 질서를 회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30년을 달려온 우리농이다. 하지만 그간 사회의 급변에 따라 돌파해야 할 문제도 산적해 있다. 사회적으로는 농민의 고령화와 후계농 부재, 식생활 문화 변화, 기후 위기 등을 직면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사회 변화에 따른 운동 방향성 논의의 필요성과 생명 농산물 나눔사업의 정체, 각 교구·지역 간 편차와 불균형 등이 있다.

“30년이라는 시간은 축하받아야 하는 게 맞지만, 마냥 즐길 수만은 없는 게 현실입니다.”



믿음으로, 신뢰로

안 신부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가 현 시점에서 가장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예로 ‘친환경 인증’ 문제를 꼽았다. 친환경 인증은 400여 가지 검사를 통해 농약 성분 검출 여부를 조사하는데, 수십 년 전 쳤던 농약이 남아 있거나 옆에서 뿌린 농약이 날아와 검출돼도 인증이 취소된다. 안 신부는 “공장에서 찍어내 마트에 진열할 수 있는 무결점 상품 만드는 것을 농업으로 이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가톨릭농민회의 목표는 처음부터 토양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토양이 자기 생명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순환 체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안 신부는 “퇴비를 지역 안에서 만들어 밭에 투여하고, 다시 생산물을 거두는 자연순환 체계는 친환경 인증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며 “농민들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 과정을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비자는 이 전반적인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가톨릭농민회를 믿어주고, 생산자인 농민도 우리농이 소비해 준다는 믿음으로 서로 간 ‘신뢰’를 다져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분회 농민들은 땅 살리는 데 중독된 사람들”이라고 했다. “중독되지 않으면 이렇게 못하죠. 농촌의 앞날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때마다 하늘 한 번, 땅 한 번 쳐다봅니다. 유기농법으로 30년을 살린 땅인데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겠어요.”



박민규 기자 mk@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2024-06-26 오전 8:32:12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