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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뜻 찾아내는 식별력 키우기 | 2024-0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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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마태 7,24) 살아오면서 많은 시련과 위기를 겪으며 삶이 흔들림을 누구나 경험하였을 것이다. 사회 초년생에서 노년에 이른 어르신까지.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에게도 위기는 닥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바다 위 폭풍우나 풍랑 같은 위기나 시련이 닥쳐왔을 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돈이나 재산, 권력이나 지위가 아닌 하느님뿐이시며 그분께 의탁하는 신앙뿐임을 고백하게 된다. 성경은 곳곳에서 어떤 시련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아 든든히 기댈 수 있는 바위와 같은 분으로 하느님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주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는 말씀은 어떤 뜻일까? 먼저 예수님의 산상 설교(마태 5-7장) 말씀을 그저 듣지만 말고 실행으로 옮기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이를 ‘순종’이라고 한다면, 순종이 맹목적인 복종이 아님은 분명하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제자를 바라지 않으셨다. 신앙에서 순종은 ‘식별’의 결과다. 그것은 자신의 뜻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다. 처음에는 갈등을 겪지만, 조금씩 자기 뜻을 하느님 뜻에 맞춰가며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신앙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진정한 순종은 ‘자발적인’ 순종이다. 이는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계획을 전해 듣고 곰곰이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며 오리무중과 같은 시간을 거친 후에 도달한 신앙의 확신과도 같다.(루카 1,26-38 참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에 옮기라는 말씀은, 그분의 말씀 하나하나를 글자 그대로 따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인간 삶은 복잡하고 예측 불가하기에 예수님께서는 모든 답을 예견하여 알려주실 수 없으셨다. 혹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문답집처럼 정형화된 답을 그대로 반복하기를 바라지 않으셨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계속 아버지의 뜻을 찾아가도록 함께 길을 걸으며 격려해주고 동반해 주셨다. 복음서의 예수님과 우리의 현실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존재한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약속하시며 우리가 성령의 도움으로 그 거리를 뛰어넘어 당신 말씀에 담긴 하느님 뜻을 헤아리고 그것을 실행하도록 안배하셨다. 불확실하고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복잡한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영적인 귀를 쫑긋 세울 필요가 있다. 양성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식별력 함양이다. 양성의 관건은 스스로의 삶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읽어내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아기처럼 떠먹여 주는 것만을 받아먹는 수동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다는 데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묻고 찾아 나서라고 재촉하신다. 오늘 주님께서 나에게, 공동체에 해주시는 말씀, 함께 고민하고 찾아가야 할 그분의 뜻은 어떤 것일까? 정형화된 답은 없다. 진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주님과 함께 묻고 찾아가는 길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주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 한민택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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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6-26 오전 8:12:12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