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 /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 시는, 1940년대 일제 말기 때 독립 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이육사(李陸史, 1904~1944) 선생님이 쓰신 ‘광야’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 늘 생각나는 성경의 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세례자 요한입니다. 마치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짖던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가 지금도 가까이에서 들리는 듯합니다. 구세주를 기다리며 광야에서 외쳤던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 회개하며 구세주를 맞이하라는 세례자 요한의 울부짖는 소리가 지금도 가까이에서 들리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무슨 소리를 외쳤습니까? 바로 이 소리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는 이육사 시인처럼, 세례자 요한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오로지 회개하는 것만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올바른 자세임을 목놓아 외쳤습니다.
그렇다면 회개란 무엇입니까? 회개란 한마디로, 우리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우리의 몸과 영혼을 되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돈과 명예와 이기적인 욕심과 탐욕에 빼앗겼던 내 몸과 영혼을 하느님께 다시 되돌려 드리는 것이 회개입니다. 시기와 질투, 미움과 증오에 빼앗겼던 내 몸과 영혼을 다시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는 것이 회개입니다.
성인들의 삶은 우리들의 삶과 특별히 다를 게 없습니다.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성 프란치스코도 젊어서는 세속적인 것으로 젊음을 불사르려 하였고, 즐거움과 쾌락의 오아시스를 꿈꾸고 찾아다녔습니다. 이런 모습은 어쩌면 지금 나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인들은, 그렇게도 목말라 하면서 찾아다녔던 그 모든 세속적인 것들이 결국 자신의 영혼을 갉아 먹고, 영혼을 사막처럼 메마르게 하는 빈껍데기임을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오로지 하느님만이 참 기쁨과 행복을 주시는 분임을 고백하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되돌아갔습니다. 이처럼 회개란, 우리의 본래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본래의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느 유명한 성자에게 두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이 용서받을 수 없을 만큼 크고 많은 죄를 지었다고 괴로워하는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기억에 남을 만한 큰 죄는 결코 짓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죄 없음을 자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성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분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지금 두 분은 밖으로 나가서 자기가 지은 죄만큼 크기의 돌을 각자 들고 오십시오.”
잠시 후, 용서받을 수 없을 만큼 크고 많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 사람은 끙끙거리면서 엄청나게 무겁고 큰 돌을 들고 왔습니다. 그러나 기억에 남을 만한 큰 죄를 짓지 않았다고 자신의 죄 없음을 자랑했던 사람은 밤 한 톨 만한 자그마한 돌멩이를 몇 개 주워왔습니다. 성자는 그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분 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각자 들고 온 돌을 다시 제자리에 놓고 오십시오 .”
용서받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무겁고 큰 돌을 들고 온 사람은 손쉽게 그 돌을 제자리에 놓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큰 죄를 짓지 않았다고 자신의 죄 없음을 자랑했던 사람은 밤톨만한 자그마한 돌멩이를 어디에서 주워왔는지 알 수 없어서 그냥 들고 돌아왔습니다. 성자는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 죄를 지었지만 괴로워하며 뉘우치는 사람은 쉽게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지만, 자신이 지은 죄를 하찮게 생각하고 작은 죄는 죄가 아니라고 가벼이 여기는 사람은 뉘우침이 없기에 인간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작은 죄라도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뉘우치는 사람은 그 죄를 벗어버리고 맑은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며 자유를 누리지만, 자신이 지은 죄를 하찮게 여기고 작은 죄를 가벼이 여겨 뉘우침이 없는 사람은 결국 그 죄의 작은 돌멩이들로 인해서 영혼의 맑은 샘물이 막히고 말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부르짖는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봅시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글 _ 이창영 신부 (바오로, 대구대교구 대외협력본부장)
1991년 사제 수품. 이탈리아 로마 라테란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교회의 사무국장과 매일신문사 사장, 가톨릭신문사 사장, 대구대교구 경산본당, 만촌1동본당 주임, 대구가톨릭요양원 원장을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