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면접조서에는 제가 여자가 아닌 남자로 돼 있었습니다. 물어보지 않는 질문도 있었는데, 언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일을 해서 돈을 벌면 돌아갈 수 있다’고 답변이 적혀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허위로 작성한 면접조서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데 2년이 걸린 무나(가명, 이집트)씨에 대해 국가와 통역인, 난민전담공무원이 공동으로 3700여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2021년 나왔다. 법무부는 1심 결과에 승복해 배상금을 지급했고, 통역인과 공무원은 항소했다. 그 결과 법원은 최근 “중과실이 없다”는 이유로 통역인과 공무원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난민인권센터는 13일 세계 난민의 날(20일)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낙원홀에서 토론회를 개최, 이같은 재판 결과를 통해 난민 행정 절차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난민행정권력에 맞서기’란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는 무나씨의 법률 대리인이었던 재단법인 동천 권영실 변호사가 직접 사건 경과를 설명했다.
권 변호사는 “법원이 법무부의 행위를 얼마나 선회해서 해석하려 노력했는지 드러난다”며 “판결이 매우 아쉽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통역인의 경우 난민 면접에 관여할 권한이나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고, 공무원이 난민 면접을 불충분하고 형식적으로 진행한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경과실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난민인권센터 김연주 활동가도 “면접조서 조작사건은 난민 심사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점이 전부 밀집돼 나타난 결과”라며 “재판 당시 핵심 증거로 작용할 수 있는 면접 영상이 하나도 녹화된 게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김 활동가는 “한국에 난민 신청자가 늘면서 법무부가 취했던 조치는 심사 적체를 해소하고자 신속·집중·일반·정밀의 네 가지로 분류하도록 했다”며 “신속으로 분류된 심사 대상자에 대해선 1~2시간 이내로 면접을 간단하게 실시했으며, 이들 가운데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의 아랍권 신청자 다수의 난민면접조서가 심각하게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난민면접조서조작사건이 발생했던 2016년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심사한 현황을 보면, 5010건 가운데 신속심사로 분류된 건수는 68.6%인 3436건이었으며, 이중 이집트 국적자의 난민 신청 838건 중 791건(94.4%)이 신속심사로 분류될 정도로 많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관련 결정례에 따르면, 법무부는 신속심사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월 40~44건의 처리목표를 설정하도록 하고, 이에 미달할 경우 경위서를 내도록 하는 등 지침을 무리하게 이행한 정황도 드러났다.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이진화 활동가는 “현재 한국의 난민 행정은 난민을 받지 않기 위해 설계됐다고 해도 무방하다”며 “이는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