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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언어 2024-06-20


인류역사상 최초로 시도된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총지휘했던 프란시스 S. 콜린스 박사는 대학 시절 열렬한 무신론자였다. 유전학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달은 후 의학으로 전공을 바꾼 뒤부터 종교적 신념, 신앙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하니 매우 아이러니하다.

콜린스는 신의 존재와 신앙을 부정하는 모든 종류의 가설과 주장들을 반박하는 과학자로도 유명하다. 과학의 진실을 터무니없이 거부하는 종교인들 역시 그는 반박한다. 신에 대한 믿음과 과학에 대한 믿음은 얼마든지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유전학을 전공하고 진화론을 신봉하는 뛰어난 과학자인 콜린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89년 여름, 그는 대학생 딸과 함께 의료봉사 활동을 위해 나이지리아를 찾았다.
 


아프리카에 대한 호기심, 선진 의료기술로써 무언가를 기여하고픈 욕구, 약간의 우쭐함을 품고. 그런 기대도 잠시. 아프리카의 열악한 공중보건체계 현실은 그의 희망과 의욕을 단번에 앗아갔다.

어느 날 오후, 쇠약해지고 다리가 심하게 부은 젊은 농부가 병원을 찾았다. 숨을 들이쉴 때면 맥박이 거의 사라졌다. 결핵이 원인인 ‘기맥’ 증상이다. 심장 주변 심낭에 엄청난 양의 물이 차 혈액순환을 방해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 의료기구도 전문의도 없는 그곳에서 콜린스는 구멍이 큰 큰 바늘을 가슴에 꽂아 심낭에 고인 물을 빼내는 위험천만한 시술을 감행했다. 기맥은 곧바로 사라졌고 부은 다리도 하루 만에 빠르게 호전되었다. 가슴을 쓸어내린 그는 잠시나마 희열까지 느꼈다.

그러나 이런 행운이 무슨 대수인가. 다음날 아침, 익숙한 우울함이 다시 찾아왔다. 결핵을 부른 환경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약값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농부는 결핵이 재발해 죽을 게 뻔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며 환자를 찾은 그는 성경을 읽고 있는 그에게서 영원히 가슴에 새겨질 말을 들었다.

“제가 보니까 선생님은 지금 내가 대체 여기를 왜 왔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제가 알려 드릴게요. 선생님이 여기 오신 이유는 딱 하나예요. 저를 위해 오신 거예요.”

그의 말을 곱씹던 콜린스는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그때의 체험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형언할 수 없는 확신에서 나오는 눈물이었고, 그 낯선 장소에서 바로 그 순간에 내가 하느님의 의지와 조화를 이루면서 대단히 예외적인 그러나 기적 같은 방법으로 이 청년과 인연을 맺었다는 확신이었다.”


글 _ 전대섭 (바오로, 전 가톨릭신문 편집국장)
가톨릭신문에서 취재부장, 편집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바보’라는 뜻의 ‘여기치’(如己癡)를 모토로 삼고 살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06-20 오전 9:12:14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