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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휩쓸고 간 땅, 희망은 있는가 | 2024-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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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을린 사랑’ 원작자 무아와드의 전쟁 4부작 중 하나 아버지 묻으러 간 고향서 만난 전쟁고아들의 분노와 치유 그려 올해로 6·25전쟁이 발발한 지 74년이 됐다. 같은 민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눈 비극은 남북한의 오랜 분단과 갈등, 이산가족, 실향민 등 여전히 또 다른 아픔과 상처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70년이 지난 오늘날 전쟁의 참상을 일상에서 체감하기는 힘들다. 대화마저 끊긴 정전 상태의 한반도에서 해결되지 않은 전쟁의 참혹함과 아픔, 평화로운 일상의 소중함을 한 편의 연극으로 되새겨보면 어떨까. 서울시극단의 ‘연안지대’가 14일 개막했다. 아버지의 시신을 묻을 땅을 찾아 나선 아들의 여정에서 전쟁의 참상을 마주하는 내용이다.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그을린 사랑’의 원작자로도 유명한 와즈디 무아와드(Wajdi Mouawad, 1968~)의 작품이다. 레바논 출신의 무아와드는 내전을 피해 고국을 떠난 뒤 프랑스·캐나다 등에서 생활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 4부작(연안지대·화염·숲·하늘)을 썼다. ‘연안지대’가 우리나라에서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억조차 희미한 아버지 이스마일의 사망 소식을 들은 윌프리드는 아버지의 시신을 묻기 위해 고향으로 향한다. 하지만 전쟁이 휩쓸고 간 그곳에는 아버지를 묻을 땅도, 그의 부모가 추억하는 아름다운 풍경도 남아있지 않다. 땅 밑은 내전으로 희생된 이들의 시신이 들어찼고, 땅 위는 살아남았지만, 전쟁의 잔혹함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이들의 피폐함이 가득하다. 윌프리드는 그곳에서 또래의 수많은 전쟁고아를 만난다. 전쟁 중에 실수로 아버지를 죽인 뒤 어른들을 혐오하는 아메, 아버지가 죽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광기로 계속 웃는 사베, 부모에게 버림받은 후 사람들을 만나면 엄마 역할을 하는 마시, 남자친구를 잃고 강가에 쪽지를 보내는 시몬, 사라져버린 사람들이 안타까워 전화번호부에 적힌 이름을 외우고 기록하는 조제핀 등 모두 속절없이 무너진 가족과 세상 앞에 상처받고 파편화된 인물들이다. 폭격 속에 태어난 그들은 고향 땅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그들에게 적은 절망과 분노를 물려준 부모 세대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스마일의 시신이 묻힐 만한 장소를 찾아 함께 이동한다. 그의 시신은 자신들이 목격해야 했던 부모의 시신과 달리 ‘훼손되지 않았고, 바라볼 수 있으며, 만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고 방황하던 그들은 부모 세대와 화해하고 스스로를 치유한다. 그리고 의미 없고 희망 없어 보이는 현실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김정 연출은 “전쟁은 벌어지는 과정보다는 그로 인해 어떤 것들이 파괴됐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들의 아픔은 우리에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른들이 물려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떠안은 이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봐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관람 연령이 16세 이상이다. 그만큼 거칠고 불편한 표현이 많다. 하긴, 전쟁을 곱고 순화된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비롯해 분쟁 중인 지역의 참혹함,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살아남은 이들이 겪어야 할 피폐함,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변형된 상처를 지닌 한반도, 그리고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당혹감과 우려마저 무뎌져 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연극 ‘연안지대’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문의 02-399-1000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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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6-19 오전 11:12:12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