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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불법일 수 없다 | 2024-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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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2023 인권의식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본인의 인권이 존중된다는 응답이 2019년 이후 증가세에서 처음으로 전년 대비 1.9%p 감소한 86.5%를 기록했다. 사회 전반의 인권이 존중받는다는 응답은 2021년 이래로 계속 감소세를 보이며 71.0%로 나타났고,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인권이 존중되고 있다는 응답 또한 작년 대비 감소한 50.3%에 그쳤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 집단을 세분해 인권이 존중되고 있는지 조사한 결과는 여성 인권이 81.2%로 가장 높았고, 이주민 인권이 36.7%로 가장 낮았다. 특히나 혐오 표현의 대상으로 이주민이 14.9%, 난민이 7.3%를 자치하고 있는데, 난민은 다행스럽게도 작년 대비 3.6%p 감소했지만, 이주민은 작년과 거의 동일한 수치로 나타났다. 여성(31.2%), 장애인(27.6%), 노인(22.2%)에 비하면 이주민과 난민이 혐오 표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적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주민 인권 존중이 가장 낮게 나타난 조사 결과를 고려한다면 오히려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관심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혐오 표현은 이주민과 난민이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부당한 판단에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이주민과 난민의 피부색, 국적, 외모 등을 가지고 그들을 깎아내리는 식의 표현이 주를 이룬다. 또한 그들에 대한 차별, 심지어는 폭력까지 조장하며 혐오 표현을 쏟아내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국제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에서는 2018년부터 ‘혐오의 말을 잠재워라!’(Silence Hate) 프로젝트를 펼치며 교육과 토론을 통해 혐오 표현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해 오던 용어가 차별과 배제를 담기 시작하면서 혐오 표현으로 변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용어가 ‘다문화’다. 다문화 가정은 ‘서로 다른 국적?인종이나 문화를 지닌 사람들로 이뤄진 가정’을 지칭하는데, 한국사회에서는 국제결혼으로 한정해 결혼이주민과 한국인으로 구성된 가정을 일컫는 말로 흔히 사용돼 왔다. 하지만 다문화 가정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도 우리 사회의 이주민 수용 역량이 강화되지 못하다 보니 이 표현이 그들을 차별하고 심지어는 혐오하는 표현으로 전락했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호소이기도 하다. 차별과 배제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용어는 ‘불법체류자’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불법체류는 ‘정식 절차를 밟지 않거나, 기한을 어기면서 다른 나라에 머무르는 일’이다. 합법적 체류 자격을 얻지 못한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합법의 반의어인 불법을 사용하는 것이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불법체류와 불법체류자는 완전히 다른 맥락을 지닌다. 전자는 체류 자격의 합법, 불법 여부를 가리는 말이지만 후자는 한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불법으로 전락시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이런 맥락을 지적하며 지난 2018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용례를 따라 ‘불법체류자’(illegal immigrant)라는 용어를 ‘미등록 이주민’(undocumented immigrant)으로 변경할 것을 권고한 바 있으며, 현재 이주민, 난민 관련 활동가들 역시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과 비슷하게 당신 모습으로 만들어 내셨다고 믿어 고백하며(창세 1,26 참조), 모든 인간 존재가 존엄하다고 선포한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의 눈에 ‘존재는 불법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문 기사와 뉴스 영상에서 불법체류자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이 말을 비롯한 차별과 배제의 혐오 표현을 지양하고 인간 존재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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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6-19 오전 10:32:14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