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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님 성상, “여긴 내자리야” 하듯 벽감 안에 들어가다 2024-06-19

카라라 대리석 산지를 샅샅이 뒤져 5개월 만에 양질의 대리석을 찾았다. 겨우 숨을 돌리고 작업을 시작하려니 한여름 40도가 넘는 더위가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또 다른 걱정거리가 내 앞에 펼쳐졌다.


김대건 신부님 성상을 피에트라산타에서 바티칸까지 약 400km를 운반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하늘이 하얘지기 시작하였다. 바티칸까지 운반하려면 상자를 짜고 눕혀서 차에 실어야 한다. 도착하면 다시 세워야 하는데 전체가 하나의 통으로 된 돌이기 때문에 눕힐 때 발목에 힘이 집중되면서 부러질 것이 염려됐다. 그리고 운반 도중에 충격이 생기면 대리석에 손상이 갈 수도 있기에 내내 노심초사했다.


전문가들을 찾아가 구조 계산도 해보고 조각가들과 상의해 대리석을 덧붙여 보강하는 방법도 연구해 봤으나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전문가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그러던 중 조반니(Giovanni Gherarducci)라는 나무 상자 작업하는 천사가 나타났다. 조반니는 조수 한 명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8일간 작업을 했다. 그는 전체를 4등분해 앞뒤 좌우로 움직이지 않게 나무를 끼우고 붙이는, 그야말로 신의 경지일 만큼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였다. 이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딱 한 명인데 그 천사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가 도와준 덕분에 작품을 눕힐 때 무게가 발목에 가지 않고 힘이 전체로 분산돼 안전하게 눕힐 수 있었다. 트럭에서 떨림이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아 400km를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고 성 베드로 대성당에 도착해서 세울 때도 손상이 가지 않았다.


김대건 신부님 성상이 세워질 장소의 벽감은 지상에서 4.5m 높이에 있었고 그 위에 올려놓고 벽감 속에 밀어 넣어야 했다. 이 작업은 피에트라산타에서 바티칸으로 옮겨오는 일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천사가 나타났다. 이탈리아에서 설치 작업을 제일 잘한다는 밍구치(Minguzzi)라는 전문가를 만난 것이다. 그는 김대건 신부님 성상을 올려놓기 위한 튼튼한 철조구조물을 제작했다. 작품의 무게는 6t 정도인데 60t이 올라가도 견딜 수 있을 뿐 아니라 수평도 완벽하게 맞췄다. 또한 공구를 이동하는 계단, 추락 방지를 위한 난간도 아주 튼튼하게 만들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도착한 김대건 신부님 성상. 이제 크레인으로 성상을 들어 올려 벽감으로 옮기는 난도 높은 작업이 남았다. 머리 위의 갓, 도포 자락과 영대 끝자락을 잘못 건드리면 부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온몸은 비 오듯 땀이 흘렀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연속해서 벌어졌다. 평소라면 작품을 들었다 내리길 수차례 반복하는데 한 번에 벽감 안에 내려놓은 것이다.


안쪽으로 넣기 위해 바닥에 비누를 바르고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릴 때 사용하는 잭으로 펌프질했다. 정확히 중앙에 한 번에 밀어 넣어야 했기에 긴장감이 작업장은 감돌았다. 그런데 그 순간 김대건 신부님 성상이 “여긴 내 자리야”라고 하듯이 뒷걸음질하면서 벽감 안에 쏙 들어갔다. 1cm의 오차도 없이 정중앙으로 말이다.


아래에서 걱정스럽게 지켜보시던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님, 예술담담 국장님, 신부님들, 수녀님들 그리고 신자들 모두가 박수치며 환호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600년 가까이 비어 있던 이 자리는 하느님께서 김대건 신부님 성상을 위해 마련한 자리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_ 한진섭 요셉(조각가)

[가톨릭신문 2024-06-19 오전 10:32:13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