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자주 쓰는 편은 아니지만, 남이 쓴 편지 읽기는 좋아한다. 오래될수록 더 좋다. 편지 한 통 한 통에 역사의 편린이 담겨있는 까닭이다. 사서에는 적혀 있지 않은 귀한 사실이 편지로 드러나기도 한다.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1752~1800)와 노론 벽파 지도자 심환지(1730~1802)가 주고받은 서신이 대표적인 예다.
과거 심환지는 ‘개혁군주’ 정조를 가로막던 수구적인 ‘정적’으로 취급됐다. ‘정조가 암살됐다’고 주장하는 측은 심환지를 주범으로 지목할 정도였다. 그런데 2009년 2월 발견된 편지 299통이 그 통념을 무너뜨렸다. 정조가 심환지에게 친필로 쓴 ‘비밀’ 어찰(왕의 편지)이었기 때문이다.
비밀답게 그 내용은 적나라하다. 임금이 ‘정적’에게 국정을 지시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나온다. 심지어 각본까지 짜주며 ‘경은 나를 믿고 이렇게 행동하라’는 대목도 있다. 정조 기분에 따라 우스개도, 과격한 어휘도 여과 없이 등장한다.
최근 개인적으로 정조 어찰 못지 않게 흥미롭게 읽은 편지가 있다. 바로 조선 선교사 칼레(Calais, 1833~1884) 신부가 쓴 편지다. 두 통으로, 각각 1862년 조선 미리내와 1867년 중국 상해에서 작성해 고국 프랑스로 보냈다.
편지를 읽는데 ‘남 아우구스티노’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81세 노인으로, 병인박해 때 옥에 갇혀 배교를 거부하며 7일간 단식하다 선종했다고 한다. 나이와 세례명으로 보아 남종삼 성인의 큰아버지이자 양부인 남상교(아우구스티노)다. 그는 공주감영에 2개월간 갇혀있다 옥사했다. 생애 마지막 순간이 편지에 더 자세히 묘사된 것이다. 무언가 발견했다는 생각에 기뻤다.
더불어 칼레 신부의 편지에는 45세에 순교한 ‘NAM GEON’이라는 인물도 언급된다. 이름과 나이가 딱 맞는 대상이 없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혹시 편지 덕에 몰랐던 순교자를 발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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