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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현 신부의 사제의 눈] 밀양 성폭행 가해자의 죄와 벌 | 2024-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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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도 유명한 만화 배트맨에서 주인공 브루스 웨인은 자신이 사는 고담시의 악당과 싸운다. 구약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고담시는 범죄의 소굴이었다. 무엇보다 사법 시스템이 망가져 있었다. 범죄자와 맞서 싸워야 하는 경찰과 검찰마저 부패한 곳이 고담시다. 그래서 브루스 웨인은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박쥐로 분장하고 범죄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범죄와 싸우는 브루스 웨인은 스스로를 앙갚음한다는 뜻의 ‘복수(I’m vengeance)’라고 말한다. 하지만 배트맨도 알고 있다. 자신이 하는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는 것을 말이다. 정의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배트맨이 악당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나오는 것이다. 배트맨에게 복수하기 위해 악당이 되어버린 이들도 생겨난다. 그래서 배트맨은 고민에 빠진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악과 선인지 말이다. 자신이 정의의 이름으로 활동한다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들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2004년 경남 밀양에서 44명의 남학생이 여자 중학생을 집단 성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사건에 연루된 44명의 남학생 중 대다수가 소년부로 송치돼 보호관찰 처분만 받는 등 제대로 된 처벌 없이 수사는 종결된다. 하지만 정확히 20년 뒤 이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 다시 소환된다. 최근 한 유튜브 채널이 일명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관계자들을 폭로했다. 가해자를 편든 이도 공개됐다. 주류 언론은 과거 사건을 취재한 영상을 공개했다. ‘꽃뱀’, ‘남자 유혹하려 밀양 왔느냐’는 당시 경찰과 시민들의 발언은 사람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결국 공개된 가해자들은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일하던 가게는 문을 닫기도 했다. 이 유튜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44명 전원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처럼 공권력이 아닌 개인이나 집단이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을 ‘사적 제재’라고 부른다. 밀양 성폭행 가담자 신상공개처럼 사적 제재가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정의가 실현되는 것으로 인식한다. 통쾌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유튜버가 수사기관보다 낫다며 응원하기도 한다. 지금도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나 ‘롤스로이스 차량 돌진 사건’처럼 신상털기식 사적 제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적 제재는 온전히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의 행동은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서 끝나야 한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불러올 뿐이다. 엉뚱한 이를 피해자로 둔갑시켜 2차 피해자가 발생할 위험도 있다.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배트맨의 고민처럼 스스로 또 다른 악당이 되어버린다. 무엇보다 ‘복수’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다는 지적을 살펴봐야 한다. 이런 사적 제재가 늘어난 배경에는 사법 시스템 불신이 있다. 국민 상식에 맞지 않는 판결을 하는 법원, 사회 고위층의 범죄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리는 경찰과 검찰이 그렇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나오는 사법 시스템이다. 그런 모습 탓에 시민들은 마음속에 고담시의 배트맨을 키워낸다. 법이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니 스스로 ‘심판자’로 나서는 것이다. 죄 지은 이는 감옥에 가고 피해자들은 보호받아야 한다. 당연하다. 하지만 정의의 실현은 ‘내 손’이 아닌 ‘바른 손’으로 해야 한다. 악당을 잡겠다고 내가 악당이 되면 안 된다. 이러한 카타르시스는 영화로 족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법 시스템의 신뢰가 회복되어야 한다. 즉 권력이 올곧아야 한다는 말이다. 기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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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6-12 오전 11:32:11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