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 바티칸 박물관 소장. OSV
원죄와 실낙원원죄(原罪, 라틴어 : peccatum originale)는 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이브는 영어식 표현이다)가 주님과의 약속을 어긴 죄를 일컫는다.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에 손을 댄 아담과 하와의 선택으로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주님에게 죄를 짓게 되었다는 교리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기도 하다.
성경에서는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시편 51장 7절에는 “정녕 저는 죄 중에 태어났고 허물 중에 제 어머니가 저를 배었습니다”라고 언급되었다. 구체적으로 원죄 탐구를 시작한 성인 아우구스티노의 연구에 기반하여 카르타고 공의회와 제2차 오렌지회의에서 원죄의 교리를 교회 정통 교리로 승인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종교개혁자들은 원죄가 욕정의 근원으로 세례 이후의 인간에게서도 유지되며, 자유 의지가 전적으로 타락하여 자발적으로는 선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지만, 가톨릭교회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원죄 역시 사해진다고 본다는 점이다.
원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예술 중 최고봉은 역시 영국의 시인인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의 「실낙원」(失樂園, Paradise Lost)이다. 12권에 걸쳐 주님의 통찰력과 인간의 자유의지 간에 벌어지는 갈등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장대한 드라마를 구원의 예언을 믿으며 낙원을 떠나는 아담과 하와로 끝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미술에서는 너무나 많은 작품이 있어 어느 하나를 최고라고 선정하기엔 불가능하다. 폴란드의 작곡가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 1933~2020)의 오페라 ‘실낙원’은 음악 쪽에서 손꼽힐 만한 성과다.
처음 폴란드로 작곡을 공부하러 갔을 때가 1992년이었는데, 공산주의에서 막 개방된 국가였다. 크라쿠프 공항에 내리니 온통 회색이었다. 건물과 구조물, 날씨, 그리고 폴란드 말까지 짙은 회색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돌이켜 보면 회색이라는 색감은 황폐하고 불안했던 내 마음이었다. 용기를 내 남이 가보지 못한 나라에 발을 내디뎠지만 좀처럼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미래를 생각하니 암울하기만 하였다.
학교의 기숙사는 말로만 듣던 수용소가 아닐까, 과연 먹고 살 수 있는 식료품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의문이었고 걱정거리였다. 단언컨대 쉽게 항공권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였으면 바로 포기하고 떠났을 수도 있었다. 아담과 하와가 낙원을 떠나 황무지로 향했을 때 이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한다.
마음에 안정을 가져온 것은 처음으로 미사에 참여했을 때다. 한국과 다르지 않은 전례와 폴란드에서 맞이한 첫 영성체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어렵고 암울한 순간에 위안을 준 것이 평생을 해왔던 미사였다. 최초의 인류가 낙원에서 쫓겨났을 때 그들에게 구원의 약속은 바로 이런 것이었을 거다. 근래에 방문한 폴란드는 예전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이 번화했다. 주님께서 내게 1990년대 초의 폴란드를 보게 한 것이 얼마나 은혜로운지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펜데레츠키 오페라 실낙원 중 Adagietto
//youtu.be/6ryeC9E4GcE?si=C8s8D9H2CMx82bOC
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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