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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과 동반하는 교회’ 실현 요청…다수는 성직주의 지적 2024-06-05

주교회의(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제2회기 준비를 위한 한국 교회 종합 의견서’를 발표했다. 총 39개 항의 이 의견서는 시노드 제1회기의 결실을 바탕으로 제2회기를 준비하기 위한 각 교구의 의견을 종합하고 성찰한 것이다. 주교회의는 16개 교구 중 13개 교구가 제출한 의견서들을 숙고하고, 제안 내용을 간추려 한국 교회 종합 의견서로 종합했다. 주요 내용을 키워드별로 살펴본다.


■ 가난한 이들은 교회 여정의 주역들


각 교구 의견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주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에 대한 성찰이다. 종합 의견서는 먼저 “오늘날 교회가 점점 더 가난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환경과 구조가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를 반성했다.


이는 교회의 중산층화에 대한 우려와 같은 맥락이다. 중산층화된 교회 안에서 가난한 이들은 특수 계층으로 여겨지기 쉽다. 의견서는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사목의 특수한 수혜자로 대상화해 온 것은 아닌지”를 묻고 “교회 안에서 가난한 이들이 소외되는 현실을 인식하며, 그들과 함께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고백했다.


의견서에서는 한국교회는 이러한 반성을 바탕으로, 가난한 이들을 교회의 중심으로 삼기 위해서는 가난한 이들과의 인격적 만남, 이에 기반을 둔 지원과 동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 주일 미사에 참례하거나 교회 활동에 참여하는 신자들과의 사목에만 안주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의 삶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변화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밖으로 나가 가난한 이와 함께하고
복음 선포하는 교회 본질 강조
여성에 제한된 참여 구조 지적



■ 선교로서의 교회


‘선교적 교회’로의 쇄신을 강조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망대로, 의견서는 한국교회가 ‘세상에 개방적이고 세상 사람들을 환대하며 그들 안에 현존하는 교회’로 쇄신돼야 한다고 전했다. 즉 교회가 자신 안에 머물지 않고 밖으로 나아가 “가난한 사람들, 자비를 바라는 사람들 한 가운데서 그들을 위한 착한 사마리아인이 돼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다.


여기서 ‘선교’는 교세 확장의 수단이 아니다. 선교를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본질’이자 ‘그리스도 신자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내용’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교회 전체가 전적으로 선교를 위한 교회가 되도록 제도적, 구조적 변화”가 요청된다.


특별히 교회가 선교 사명에 전적으로 투신하기 위해서는 “가정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가정의 성화와 쇄신, 가정을 위한 다양한 사목적 노력”에 매진해야 한다. 선교와 관련된 또 한 가지 중요한 성찰 주제는 디지털 선교의 노력이다. 이는 물리적 만남을 본질로 하는 아날로그형 선교와 유기적 균형을 이뤄야 한다.


■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여성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여성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청은 시노드 여정에서 수없이 강조되고 있다. 의견서에서는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 수행에 비해 리더십과 전례 분야 등에서 여성들의 참여가 매우 제한됨 등이 지적됐다. 특히 남성에 집중된 비정규 성체 분배 직무, 본당 사목 평의회 회장이나 단체장 등 남성 중심의 구조적 문제에 주목했다.


이러한 고착된 문화와 고정 관념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의식적 노력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본당 사목 평의회에서의 여성 역할 증대를 비롯해 교회 기관에서의 리더십 영역에 여성들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등 모든 영역에서 여성들의 참여 폭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성직자 중심주의 개선하고
평신도 의견 수렴 장치 마련 등
시노달리타스 실현 구조 개편 촉구



■ 성직주의와 시노달리타스에 기초한 양성


여러 교구가 성직주의 문제를 지적했다. 교회 내 의사 결정 과정이 “성직자 중심적이고, 교회 운영 방식이 관료적이며, 성직자에 대한 책임 면제가 관행화돼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직주의의 권위주의적 태도와 관행은 사제들뿐만 아니라, 수도자와 평신도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이와 관련해 사제들의 직무 수행 검증 절차 도입 의견이 제시됐다. 사제단의 공동 책임성 강조와 지구 사제 모임 활성화에 대한 의견도 제안됐다. 주교 스스로 시노달리타스 영성을 살고 모든 영역에서 시노드 정신을 구현하려는 열정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교회 내 모든 양성 활동에서 시노달리타스에 기초한 양성의 중요성이 공통적으로 지적됐다. 성직주의 극복을 위해서 초기 사제 양성 과정은 물론 서품 뒤 지속적인 사제 양성 과정도 시노달리타스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평신도는 양성의 대상만이 아니라 공동 책임을 지닌 주체로서 양성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그 가장 효과적인 표지는 수도자나 평신도가 신학교 교육에 참여하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다. 평신도 양성과 활용을 위한 교구 차원의 양성위원회 설립도 제안됐다.


■ 교구 및 본당 사목 평의회


많은 교구들이 시노달리타스 실현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본당 사목 평의회와 재무 평의회 설치를 의무화할 것을 제안했고, 이를 위한 선결 조건으로 교구 사목 평의회가 시노달리타스를 구현하는 구조와 운영으로 쇄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본당 및 교구 사목 평의회는 위원 구성에서 하느님 백성의 다양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논의를 위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아 신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본당 사목 평의회는 자문 기능보다는 사목자의 결정을 집행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노드 과정에서 시노달리타스 정신에 따라 일부 교구에서 사목 평의회를 새로 설치하거나 회칙을 개정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이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교구장 주교의 각별한 관심과 노력이 요청된다.


■ 주교회의의 시노달리타스 실현 노력


주교회의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로서 ‘총회’의 경청 구조 또는 의견 수렴 구조를 시노달리타스에 기초해 쇄신해야 한다는 요청이 있었다. 현재 주교회의 총회 의안은 각 교구 국장회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수렴되는데, 이를 모든 하느님 백성이 참여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다. 총회의 논의 내용에 대한 의견도 제시됐다. 주교회의 총회는 시대적 현안들을 깊이 고민하고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행정적인 안건들은 실무자 회의에서 결정하도록 권한을 위임할 필요가 있다.


주교회의 차원에서 시노달리타스 실현에 장애가 되는 환경과 문화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오는 10월 제2회기 이후 각 지역교회에서의 이행 단계에서 시노드의 성과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확산하기 위한 교구 내 상설기구 설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시노드가 일회성 행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후속 교황 권고를 비롯한 관련 문서들의 연구와 심화, 확산을 담당할 구심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06-05 오전 9:12:07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