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News

  • 전례성사
  • 가톨릭성미술
  • 가톨릭성인
  • 성당/성지
  • 일반갤러리
  • gallery1898

알림

0

  • 가톨릭뉴스
  • 전체 2건

돌속에 갇힌 김대건 신부님, 자유를 찾아 드리다 2024-06-05

2023년 1월 9일 성상 작업에 딱 맞는 대리석을 기적같이 찾아서 신부님의 축성을 받은 후 바로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에 있는 작업장(Studio Stagetti)으로 이동해 조각을 시작했다.


1981년부터 1990년까지 작업을 하던 동네, 피에트라산타에서 김대건 신부님 성상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조각가 이경재 선생의 소개로 현지인 니콜라와 그의 아들 세바스티아노와 같이 작업하기로 계약했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한국에서 사용하던 나의 공구와 작업 시스템이 다르고 또 작업하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니콜라와 의견이 부딪치는 일이 잦았다.


니콜라는 김대건 신부님 성상은 벽감 안에 설치되기 때문에 뒷모습은 보이지 않으니 뒷면은 조각을 자세히 하지 말자 했지만, 나는 뒷모습도 정면과 똑같이 정성껏 조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내가 조각을 한다는 것은 돌 속에 갇힌 인체를 해방시켜 주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작업 후반기에 미완성작을 만들면서 완전한 자유를 찾아주지 못했으니 ‘노예’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나 또한 조각가로서 돌 속에 갇힌 김대건 신부님에게 완전한 자유를 찾아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뒷모습을 정면보다 더 열심히 작업하게 된 것이다.


2023년 여름, 이탈리아에서는 40℃를 넘는 무더위가 이어졌다. 예년의 이탈리아는 여름에는 비가 잘 오지 않고 건조하기 때문에 밖은 덥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한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2023년 여름은 특별했다. 밖에서도, 안에서도 더웠고, 마음도 타들어 갔다. 작업장에 에어컨은 당연히 없었고 돌가루가 많아서 니콜라는 선풍기를 틀어놓는 것도 싫어했다. 나의 숙소는 프란치스코 성당 수도원에 있었는데 이곳 역시 에어컨은 없었다.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 모셔지는 최초의 동양 성인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작업을 하는 동안 잠을 편히 잔 날이 거의 없었다.


몸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양분을 공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은 숙소에서 달걀 반숙 두 개를 삶아서 먹고 점심은 니콜라와 식당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먹고 저녁에는 과일과 모차렐라 치즈를 먹으며 체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작업장에는 작품을 들어 올리는 호이스트 장비가 없었다. 높은 곳을 작업하기 위한 가설 비계도 열악한 상황이었다. 어느 날은 4m 가까운 높이에서 작업을 하다가 사다리가 넘어져서 바닥에 떨어지기도 했다. 그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보통은 뼈가 부러지고 병원에 실려 가는 것이 정상인데, 잠시 누워 있다가 신기하게도 벌떡 일어나 다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주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면서 “이건 기적이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옆에서 김대건 신부님이 항상 지켜주시고 있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됐다. 처음에 잦았던 니콜라와의 충돌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호흡을 맞추어 나갔고 작업은 수월하게 완성되기 시작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김대건 신부님이 항상 지켜주신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글 _ 한진섭 요셉(조각가)

[가톨릭신문 2024-06-05 오전 8:32:03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