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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의 실체변화 | 2024-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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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성체성사에서 사제의 축성으로 빵의 실체 전부가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로 변화하고 포도주의 실체 전부가 그리스도의 피의 실체로 변화하는 것을 ‘실체변화’(transubstantiatio)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중요한 개념은 ‘실체’(substantia)이다. 실체를 알아야 실체변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실체는 각 사람에 따라 또 각 철학에 따라 상이하게 정의되어왔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실체변화의 개념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과 그의 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당시 가톨릭 철학이라 할 수 있는 스콜라 철학을 집대성한 인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받아들여 스콜라 철학의 존재론과 형이상학을 정립하였고 이러한 철학적 정립을 바탕으로 그의 저서 신학대전에서 ‘실체변화’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실체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는 성체성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신자들에게 음식으로서 참으로 제공된다고 역설하면서 이 음식 제공이 육신적으로가 아니라 영신적 양식으로 제공된다고 진술한다. 또 인간에게 구원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선물로 주어지기 때문에 성체 역시 선물로 주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성체성사가 희생 제사 예물로 적절하게 서술되고 있다. 성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사로서 희생제사라고 그는 보고 있다. 성사의 실현, 즉 성 변화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이중형태로서의 재현은 당신 자신을 십자가 위에서 봉헌한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성부의 도구로서 현존시키는 제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토마스는 역사적으로 과거에 발생한 사건을 성사적으로 재현한다는 성사적 사고(思考)를 견지(堅持)한다. 성체성사 안에서 진실하게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는 것은 표징(表徵)의 양식으로만이 아니며, 감각으로 포착될 수 있지 않고, 신적 권위에 의지하는 신앙을 통해서 파악해야 된다는 점을 토마스 아퀴나스는 분명히 강조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은 오류이며, 그리스도의 말씀에 위배되는 입장이라고 분명히 배격하였다. 그는 빵의 실체가 축성 이후 더 이상 빵으로 머물지 않고 그리스도의 실체로 변화된다는 것을 분명히 진술한다. 그런데 빵의 실체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신적 능력을 통해서 빵의 전 실체가 그리스도의 살의 전 실체로, 그리고 포도주의 전 실체는 그리스도의 피의 전 실체로 변화된다고 했다. 성체성사 안에서의 변화를 모양의 변화가 아니라 실체의 변화로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토마스 아퀴나스는 빵과 포도주의 모든 속성은 축성 이후에도 그대로 남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빵과 포도주의 형체 하에 각각 몸과 피가 현존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실체는 빵과 포도주 형체의 각 부분 속에서 전체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그 실체는 장소적 현존을 넘어서는 실체의 고유한 양식으로 담겨져 있다. 그리스도는 장소적으로 천국에 존재하는 데 반하여, 성사 안에서 실체 양식으로 이 땅에, 우리 안에 현존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 지성은 결코 성체 현존의 사실을 완전히 증명해 낼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계시에 근거하여 그의 타당성을 밝혀낼 수 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성체 현존의 타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 이 성사는 구약 계약의 완성으로서 새로운 계약의 제사이기 때문에 참다운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포함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다”(히브 10,1)는 성경 말씀처럼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새 계약의 제사는 구 계약의 제사와 달라야 하고, 어떤 새로운 것이 첨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의 수난 자체가 의미상으로나 형식상으로 뿐만 아니라 진실로 이 성사 안에서 포함되어져야 하기 때문에, 이 성사는 실제적으로 그분 자신을 포함하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몸이 이 성사 안에 현존함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일치한다. 왜냐하면 성찬례에서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참된 몸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함은,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살 것이요, 나도 또한 그 안에 살 것이다.”(요한 6,57) 그러므로 이 성사는 그리스도의 가장 큰 사랑의 표지이며 그리스도와 우리를 결합시키는 희망의 보증이 된다. 셋째, 이는 우리의 신앙을 완성시키는데 더욱 합당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분의 인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너희는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 는 말씀과 같이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신성을 우리에게 보이지 않게 드러내 보이셨듯이, 또한 당신의 육체도 이 성사 안에서 보이지 않게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신 것이다. 글 _ 전합수 신부 (가브리엘, 수원교구 북여주본당 주임) 1992년 사제수품.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한국철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수원교구 청소년국 청년성서부 초대 전담신부, 수원교구 하남, 본오동, 오전동, 송서, 매교동본당 주임을 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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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6-03 오전 9:12:02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