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운다. 세례를 통하여 성령께서 머무시는 성전이 된, 그 소중한 몸이 운다. 암(癌) 덩어리 몸이 아파서 울고,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 힘들어서 울고, 외로워서 울고, 상처 입어 고름 터져 나오는 마음이 아파서 운다.
그런데 당연히 울어야 할 상황인데도 울지 않은 사람이 있다.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습니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느낀다면 삶이 늘 감사하게 다가옵니다.” 그녀는 또 이런 말도 했다.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립니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힌 면만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은 보지 못합니다.”
헬렌 켈러는 빛을 볼 수 없었던 사람이다. 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삶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그녀가 울지 않았던 이유다. 예수회 안소니 드멜로 신부(Anthony de Mello, 1931~1987)는 이렇게 말했다.
“그 누구도 감사하면서, 동시에 불행할 수는 없다.”
1913년 헬렌 켈러의 초상화
나는 ‘감사하는 마음’이 눈물을 멈추게 하고, 삶을 행복으로 이끈다는 것을 믿는다. 감사하는 사람은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10시간 동안 땀 뻘뻘 흘리며 기도하지 않는다.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아예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다. 감사하는 사람은 욕심과 시기, 질투를 극복하기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 감사한 마음 밭에는 욕심과 시기, 질투가 뿌리내리지 못한다. 감사하는 사람은 이웃을 용서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복을 이미 충만히 받아서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아직 눈물 흘리고 있는 이웃의 눈가를 닦아준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눈물의 강이 범람하는 것을 막는 묘약이 숨어있다. 그래서 신앙인의 얼굴은 밝다. 웃는다. 감사한데 왜 우는가. 희망이 있는데 왜 우는가. 웃자.
울면 안 된다. 울면 안 되는 날은? 북경반점 쉬는 날이다. 최근 한 신부님과 중식당에 갔다. 다행히 식당은 영업을 하고 있었다. 신부님은 울면을 주문하셨다. 나는 짜장면을 주문했다. 나는 울면 보다 짜장면이 좋다.
글 _ 우광호 발행인
원주교구 출신.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가톨릭 언론에 몸담아 가톨릭평화방송·가톨릭평화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취재부장, 월간 가톨릭 비타꼰 편집장 및 주간을 지냈다. 저서로 「유대인 이야기」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성당평전」, 엮은 책으로 「경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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