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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손으로 그리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단 하나의 얼굴’ 2024-05-29
 
[작품1] 아케이로포이에토스(만딜리온): 템페라, 77 x 71cm, 12세기 중반,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러시아.

아브가르 왕과 베로니카의 수건에 예수님 얼굴 찍혔다고 전해 내려와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얼굴 이콘 사라지고 없으나 러시아서 즐겨 그려



2. 만딜리온(Mandylion)

탈출기(33,18 참조)에서 모세는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씀을 올렸으나, 주님께서는 “나는 나의 모든 선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네 앞에서 야훼라는 이름도 선포하고, 네가 요청하는 자비와 동정도 베풀겠다. 그러나 내 얼굴은 보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얼굴을 뵈옵기를 원했어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사람의 아들’로 오시어,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오신 ‘단 하나의 얼굴’이셨습니다. 그분은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요한 18,37 참조)

그 ‘단 하나의 얼굴’을 사람의 손으로 그리지 않은 것이 있다고 전해 내려오는 이콘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스러운 얼굴(聖顔)이 아마포 수건 위에 묻어났다는 의미에서 그리스어로 ‘만딜리온(Mandylion)’이라 부르고, 동방 정교회에서는 ‘아케이로포이에토스’(acheiropoiétos, 사람의 손으로 그리지 않은 얼굴)라 부릅니다. 이 두 단어는 같은 의미입니다.

아브가르 왕이 그 수건으로 본인의 병을 고치고, 재난이 닥쳤을 때 도시를 수호하는 성물로 에데사의 성벽 출입구에 걸게 하여 544년 에데사를 페르시아 침략으로부터 구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비잔티움 정교회의 관점에서 이콘의 기원이라는 만딜리온 형상의 전승과는 달리, 서구 가톨릭에서는 ‘베로니카의 수건’으로 다른 성안(聖顔)의 전승이 로마를 중심으로 이어져 내려옵니다.

복음 중에 예수님께서 열두 해 동안 하혈하는 부인을 고쳐 주시는(루카 8,43-48 참조) 장면이 있습니다.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죽어가는 열두 살짜리 딸을 구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로 가시는데, 군중이 너무 많이 몰려 예수님을 밀어낼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중 열두 해 동안 하혈해온 여자는 본인의 병을 예수님께 요청할 기회조차 없자 그분의 옷만 만져도 병이 나을 것으로 생각하여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그러자 바로 하혈이 멈추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에게 손을 댔느냐”고 물으십니다. 베드로가 군중이 몰려 서로 부딪친다고 말씀을 올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안다”고 하십니다. 그제야 그 여인은 백성들 앞에 나서서 전후 사정을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며 평안히 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네 복음서에 그 부인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외경 중 「니코데모 복음」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니코데모는 바리사이이며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으며 밤에 찾아와 예수님과 대화를 했던 사람으로서(요한 3,1-21 참조) 예수님 수난 때 예수님을 위해 변호했던 사람입니다. 그 외경에 예수님의 재판에서 무죄를 증언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베로니카라는 부인이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의 무죄를 증언합니다.

“그리고 베로니카라는 이름의 여인이 멀리서 외쳤다. 나는 하혈을 했었다. 그래서 그의 옷자락을 만지니 열두 해 동안 고생했던 것이 멈추었다. 그때 유다인들이 소리쳤다. 우리 율법에는 여인이 증인으로 설 수 없다.”(외경 「니코데모 복음」 7장 참조)

베로니카는 골고타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피땀을 자신의 수건으로 닦아드렸다고 전해지는 예루살렘의 한 여인입니다. 그때 베로니카의 수건에 예수님의 얼굴이 찍혀있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베로니카1)는 라틴어로 베라 이콘(vera-icon)으로, ‘참 모습’이란 뜻이 있습니다.

베로니카의 수건은 후일 로마로 전해졌으나 16세기 이후에는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베로니카의 수건 이야기는 빌라도 문헌인 「악타 필라티」(Acta Pilati)와 야곱부스 데 보라기네가 쓴 「황금 전설」(legenda Aurea)에 나옵니다.

에데사의 성안(聖顔)이 담긴 아마포도 기적을 일으키는 성물로 보관되었다가 944년 에데사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습니다. 동방 교회에서는 8월 16일을 ‘거룩한 얼굴 이송 축일’로 기념합니다. 그러나 1204년 제4차 십자군 원정대가 콘스탄티노플을 침공했을 때 예수님 얼굴이 그려진 이 아마포도 사라졌다고 전해집니다. 그리스도의 성안(聖顔) 이콘은 사라지고 없으나, 그 모습을 본 기억으로 만들어져왔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 ‘거룩한 얼굴’의 이콘은 비잔틴 지역보다는 러시아 지역에서 즐겨 그려져 왔습니다.

12세기 후반 들어 러시아 노브고로드 지역에서는 정사각형 그리스도의 성안에 수건이 생략한 형태로 등장합니다. 이 이콘에서는 눈길의 방향이 그리스도의 위치에서 보면 오른쪽에 해당합니다. 머릿결을 따라가는 금선으로, 밑으로 내린 머리카락을 네 갈래로 구불구불하게 정돈하였습니다. 수염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밑으로 갈수록 둥글게 두 갈래로 나뉘어 있습니다. 화면 전체적으로는 어두운 황색이지만 후광 부분은 밝은 황토색을 칠하였고 십자 문양은 황백색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윗부분의 이콘의 창문 안에는 ‘IC XC’(예수 그리스도)의 약자가 보이고, 품위와 함께 살아있는 느낌을 줍니다. [작품1]

 
[작품2] 아케이로포이에토스(만딜리온): 템페라, 128,5 x 91,5cm, 젖은 수염의 구세주, 15세기,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러시아.
[작품3] 아케이로포이에토스(만딜리온): 템페라, 76,5 x 60,5cm, 레클링하우젠, 독일. 시몬 우샤코프 작품.

러시아 작품 가운데 또 다른 변화를 준 성안 중에는 ‘구세주’라는 제목으로 물에 젖은 수염과 머리를 표현한 작품도 있습니다. 턱 아랫부분의 수염을 두 갈래로 빗은 듯 그렸고 수염이 구불거리는 둥근 모습도 없습니다. 머리카락도 단순히 처리하여 단정하게 네 갈래로 나뉘어 있습니다. 왜 물에 젖은 수염을 그렸는지 알 수 없지만,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렸다면, 고통에 의한 땀과 흘린 핏자국이 수건을 흥건히 적시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작품2]

17세기 들어 러시아가 중세 시대를 벗어나며 이콘도 새 국면을 맞게 됩니다. 이콘의 변화를 추구하는 바람이 불면서 유럽 화가들의 교류,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인쇄된 책들이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실적으로 표현된 이콘이 세계적 추세로 자리잡자 전통적인 교회와 예절에 익숙한 교인들은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그 시대의 귀족들은 전통적인 이콘보다는 서구의 사실적 이콘들을 좋아했습니다. 당시 시몬 우샤코프(1626~1686)는 궁정화가답게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왕가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사실적인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장식이 화려한 수건에 ‘사람의 손으로 그리지 않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이신 우리 주님’을 붉은 글씨로 써넣었습니다. [작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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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예수님의 ‘참 모습’을 가진 여인이라는 의미로 여성 접미어 ‘아(a)’를 붙인 것이 아닐까 여긴다.
 

김형부 마오로
[가톨릭평화신문 2024-05-29 오전 10:52:15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