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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김일영 조각가 | 2024-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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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가톨릭 문화와의 만남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부 활동을 하고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습니다. 제가 미술 공부를 시작할 당시에는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유행처럼 커져가던 때였습니다. 저는 오히려 클래식한 아카데미즘(Academism)에 배가 고파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로마라는 도시는 역사가 오롯이 담겨있는 곳이죠. 배고프고 힘든 유학시절이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가서 미켈란젤로 등 거장의 작품을 보며, 순수하고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조각가로서의 꿈을 구체화했습니다. 저는 개신교가 모태신앙이었는데, 로마 생활이 저를 가톨릭 문화로 인도한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하느님에 대한 갈망도 더욱 커졌죠. 1990년대에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여, 대구대교구가 운영하는 효성여자대학교(현 대구가톨릭대학교)에 부임을 하게 됩니다. 그때 가톨릭교회에서 라우렌시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미술과의 인연 가톨릭신자가 되면서 최종태(요셉·서울대 명예교수) 선생님의 권유로 배론성지에서 성모자상을 작업하고, 서울가톨릭미술가회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성미술 작가로서 첫 출발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후 서울 낙성대동성당과 포항 죽도성당 등 다양한 곳에 성미술 작품을 남겼습니다. 2007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화재가 있었습니다. 왜관수도원 대성당은 미술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잿더미만 남았었죠. 서울가톨릭미술가회 작가들과 함께 왜관수도원 건축 기금 마련 전시회를 했습니다. 2009년에는 제14회 가톨릭미술상 본상을 수상했습니다. 특별상을 수상하시는 최종태 선생님과 함께 상을 받게 돼 더 큰 영광이었습니다. 2008년, 김대건 신부님 복원 흉상을 작업했습니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산하 응용해부연구소가 갖고 있는 김대건 신부님 유해 데이터를 바탕으로, 법의학적 기법에 따라 검증하여 복원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 흉상 복원을 한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인성당의 김대건 신부님 동상을 작업했습니다. 응용해부연구소와 작업했던 흉상을 기초로 김대건 신부님의 전신상을 제작했습니다. 축복식을 위해 작품을 들고 독일로 갔습니다. 그곳 신자분들은 대부분 파독 광부와 간호사 출신이셨습니다. 그분들께서 작품을 좋아해 주시던 모습이 기억에서 잊히질 않습니다. 가장 최근 작업한 성미술은 서울 용산성당의 예수성심상(2020년)입니다. 2m 크기의 화강석으로 깎은 성상이어서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보존돼 있을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슴에 대고 있는 왼손은 ‘성심’을 상징하고, 아래로 펴고 있는 오른손은 신자들을 반기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성당이 높은 지대에 있거든요. 언덕배기를 숨 가쁘게 올라온 신자분들이 예수성심상의 오른손을 보면서 작은 위안이라도 얻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보편성이 중요한 성미술 성미술은 보편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성미술을 하는 분들이 보편성을 벗어날 정도의 개인적인 추구를 한다면, 한 번 더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피카소의 작품은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카소의 작품이 오랫동안 남아서 우리와 함께하는 것은, 그 작품 안에 미술의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피카소의 작품에 힘을 실어주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것이 빠진 작품들이라면, 보편성을 잃을 것입니다. 좀 더 많은 분들이 성미술에 관심 갖고, 참여하시면 좋겠습니다. 조선시대가 500년인데, 훌륭한 화가를 꼽으라 하면 사실 다섯 손가락이 남을 정도로 극소수이죠. 그 시대 더 많은 분들이 참여했다면, 조선시대 미술은 더 발전했을 것이고 더 많은 화가들이 역사에 남았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성미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분이 참여하신다면 한국 성미술이 보다 융성해질 것입니다. ◆ 김일영(라우렌시오) 조각가는
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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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5-29 오전 9:12:13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