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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님의 웃음소리 2024-05-29

두봉 주교(杜峰, 94)는 6.25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한국에 와서 이제 70년이 되었다. 경북 안동교구에서 주교로 사목했고, 19년 전부터는 의성군 봉양면에서 살고 있다. 봉양면은 의성에서 군위로 넘어가는 접경의 외진 마을이다. 두봉 주교는 집 앞 텃밭에 작은 농사를 지어서 소출을 주민들과 나눈다. 

거실 마루에는 햇볕이 잘 들어서 늘 밝다. 마루에 작은 좌식 탁자가 놓여 있다. 두봉 주교는 이 탁자에서 손님을 맞고 이 탁자를 제대로 삼아서 미사를 드린다. 미사복을 갖추어 입고 복사 없이 혼자서 미사 드린다. 목요일 미사에는 마을 신자 네댓 명이 참가하고 월말 미사에는 이웃 동네 신자들까지 20명 정도가 온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날마다 두봉 주교를 찾아온다. 몇 달 전에 TV 퀴즈 프로에 출연한 뒤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사람들은 TV에 잠깐 나온 늙은 성직자의 인상에 끌려서 서울에서, 부산에서, 마산에서 이 외진 마을까지 온다. 신자들도 오고,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온다. 불교 승려들도 오고, 개신교 목사들도 다녀갔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는 부부도 있고, 늙은이도 있고, 젊은이도 있다. 모두 안면이 없는 사람들이고, 사전 연락 없이 불쑥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두봉 주교는 시간을 쪼개서 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두봉 주교는 방문객들에게 신자냐 아니냐를 묻지 않고, 신앙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성당에 나오라고 권유하지도 않는다. 방문객들은 주로 먹고사는 일의 어려움이나 살아가는 일의 크고 작은 고민들을 말한다. 가족 간의 불화나 이혼 문제를 들이밀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를 묻는 사람들도 있다. 

두봉 주교는 해답을 제시하지도 않고, 충고를 하지도 않는다. 두봉 주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함께 걱정하고, 기쁜 소식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과 함께 손뼉 치면서 웃는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을 두봉 주교는 날마다 맞아들인다.

- 사람에게는 자기 사정을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걸 들어주고, 거기에 공감하고, 함께 기뻐하고, 걱정해 주면 그것으로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된다. 면담의 내용에 대해서는 비밀을 지킨다.라고 두봉 주교는 말했다.

두봉 주교는 자주 웃고, 크게 웃는다. 두봉 주교의 웃음소리는 깊은 산속의 시냇물 소리를 닮아있다. 맑은소리가 잇달아서 흘러간다. 두봉 주교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의 몸속에서 기쁨의 엔진이 작동하고 있으리라는 느낌이 든다. 두봉 주교는 작은 일에도 속 시원히 웃는다. 두봉 주교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웃음과 기쁨 
은 그가 세상을 대하는 기본 태도이며 그의 신앙생활의 중요한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두봉 주교는 1953년 프랑스에서 사제품을 받고 파리외방전교회의 신부로 한국에 파송되었다. 두봉 신부는 배를 타고 왔다. 배는 이집트, 스리랑카, 홍콩, 일본을 거쳐서 두 달 반 만에 인천에 닿았다. 1954년 12월이었다. 전쟁 직후에 폐허가 된 거리에서 배고픈 사람들이 떨고 있었다. 그 시절이 힘들지 않았는가라고 물어보자 두봉 주교는

- 가난 속에서도 따뜻한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은 사람이 따뜻한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50년대에 두봉 주교는 대전에서 사목했다. 전쟁고아들이 거리를 헤매고 있던 시절이었다. 성당은 고아들을 돌보면서 구호물자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두봉 주교는

- 그때, 아이들이 많아서 아주 재미있었다. 재미있게 지냈다. 라고 말하면서 또 웃었다.

헐벗고 배고픈 아이들이 성당에 많이 와서, 주일학교는 학년별로 학급을 편성했고 청년 신도들이 아이들을 지도했다.

- 그때, 교회는 청년과 아동들이 많아서 생기가 있었고, 모든 일들이 활발했다. 그때 아주 재미있게 지냈다.라고 말하면서 두봉 주교는 또 맑고 크게 웃었다. 그의 웃음은 그때 고생스럽지 않았는가? 라고 묻는 질문을 무안하게 하지 않고, 묻는 사람을 함께 웃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두봉 주교는 1969년 주교품을 받고, 20년 이상 안동교구장직을 맡아왔다. 안동교구는 안동, 영주, 예천, 문경, 봉화 등 경상북도 북부 지역을 맡고 있다. 여기는 전통 있고, 자긍심 높고, 자랑거리 많은 한국 유림의 본향이다. 이 지역에서 외래 종교의 신앙과 전례를 포교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까.

- 유교적 전통 때문에 이 지역에서 어려운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문화적 충돌도 없었고 유림 사회의 지도자들과도 조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 유교는 인간의 선한 바탕에 기초해 있고 양심과 정직함을 존중하는 사상이다. 유교의 바탕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좋은 가톨릭 신자들이 많이 나왔다.

하고 말하면서 두봉 주교는 또 크게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마음속에서 기쁨이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두봉 주교는 이 지역에서 학교법인 상지학원1)을 설립했고, 안동문화회관2)을 설립했고,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정권 시절에는 대전교구와 안동교구에서 지역 청년들을 규합해서 노동운동, 농민운동3)을 치열하게 전개했다. 이러한 운동들은 교회나 지역주민들과의 신뢰 관계 위에서만 가능했다. 두봉 주교의 소망대로 유림의 성지에 천주교회는 튼실히 자리 잡아 갔다. 두봉 주교는 봉양(鳳陽) 두씨로 본관을 정해 시조로 호적에 등록했다.

두봉 주교가 소속된 파리외방전교회는 교회가 현지에 자리 잡게 되면 교구와 성당의 책임을 현지 출신의 사제에게 맡기는 것을 기본 정책으로 삼고 있다. 두봉 주교는 이 원칙에 따라서 지금까지 네 번 교황청에 교구장 사직서는 제출했지만 윤허되지 않았다. 1979년에 ‘오원춘 사건’(주3 참조)으로 두봉 주교가 한국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을 때,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성은 두봉 주교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복음화성성은 두봉 주교를 퇴진시킴으로써 문제를 정리하려 했다. 이때 두봉 주교는 사직을 거절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물러나라면 물러날 수 있지만, 이처럼 어려운 때에 한국 농민을 저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 두봉 주교의 뜻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두봉 주교의 뜻을 받아주었고,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이 죽음으로써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

이런 시련의 세월을 이야기하면서도 두봉 주교는 자주 웃었다.

- 고등학교 3학년 때 종교철학 시간에 최고의 사랑과 최고의 행복에 대해서 배웠다. 그때 남에게 행복을 알려주고 사랑의 길을 보여주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다. 그 마음이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기쁘게 살고 있다.라고 두봉 주교는 말했다.

두봉 주교의 마루에는 안동교구 사제들의 다짐을 적은 ‘기쁘고 떳떳하게’라는 제목의 액자가 걸려있다. 이 액자 앞에서 두봉 주교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두봉 주교는 또 웃었다.



1)  학교법인 상지학원은 1969년 안동교구 설정과 함께 발족되었다. 상지학원은 1969년에 상지여자중학교를 설립했다. 1970년에 상지여자실업전문학교를 설립했고 이 학교는 그 후 남학생도 받아들이면서 성지전문학교로 개칭했다. 상지 전문학교는 지금의 가톨릭상지대학의 전신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

2)  안동문화회관(1973년 건립)은 신자들뿐 아니라 지역민 모두에게 개방된 공간으로, 문화행사와 각종 모임과 농민, 노동자를 위한 기도회 장소로 사용되었다. 안동 유림의 지도급 인사였던 고 유한상씨(베드로)가 천주교회가 설립한 안동문화회관의 초대 관장을 맡아서 운영했다.

3)  안동교구는 1977년 사목국 안에 「농촌 사목부」를 설립하고 농민운동을 전개했다. 1979년에 경북 영양군은 농민들에게 불량감자 종자를 보급했고, 피해를 본 농민들은 사제들과 함께 항의해서 보상을 받아냈다. 이 활동에 앞장섰던 농민회의 오원춘 분회장이 정보기관에 20여 일간 납치되어서 폭행당했다. 가톨릭 성직자들은 기도회를 열어서 전국에 알렸고, 이 기도운동은 유신철폐, 긴급조치 철폐 주장에까지 이어졌다. ‘오원춘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태로 두봉 주교는  추방당할 위기를 맞게 된다.


글 _ 김 훈 (소설가, 아우구스티누스)
1948년 서울생. 장편소설 「하얼빈」 「달 너머로 달리는 말」 단편소설집 「저만치 혼자서」 등 여럿.
[가톨릭평화신문 2024-05-29 오전 9:12:13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