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뉴스에서 한 새내기 공무원의 극단적 선택에 관한 소식이 들렸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요. 저야 일면식도 없는 제 3자의 입장이다 보니 ‘안타깝다’란 표현을 썼습니다만, 가족 입장에서는 오죽할까요? 그 비통함이야말로 단장의 아픔이자, 통한의 사고일 것입니다. 곧 꾸려진 장례식장 빈소의 모습도 머릿속을 스쳐갑니다. 애통해 하는 유가족의 모습, 황망한 마음으로 달려올 고인의 지인들. 그 자리에서 한 번쯤은 이런 말도 흘러나오겠지요.
“아니, 갑자기 왜?” “며칠 전만 해도 나랑 연락됐었는데, 도대체 왜?”
도대체와 갑자기라는 말, 특히 이 ‘갑자기’란 말에 온 신경이 가서 꽂힙니다. 과연 갑자기였을까요?
올해 대학교 2학년에 올라갔어야 할 친구의 딸은 3월에 개강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갑자기 휴학계를 냈습니다. 엄마 입장에서는 학교 가야할 아이가 세수를 하다 말고 갑자기 펑펑 울더니 ‘오늘이 휴학신청 마감일인데, 도저히 안되겠다. 1년만 재수를 해 보고 싶다’ 했답니다. 지난 학기에 좋은 성적으로 전액 장학금까지 받은 데다 2학년인 올해부터는 부전공도 신청한 상태라 부모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그런데, 조금 물러나 생각해 보니 저만 해도 그 친구로부터 들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대학생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겨울방학 두 달 내내 밤낮을 바꿔 살며, 밤에는 뭘 하는지 꼭 해뜨기 직전에야 잠을 잔다’고 말이죠. 그 아이의 긴긴 겨울밤이 어땠을지, 하루아침에 세면대 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았을 때 그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지 잠시 헤아려보게 됩니다. 성적 따라 가게 된 대학과 전공학과, 아이는 1년 내내 학교를 다니면서도 마음 한 자락이 못내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휴학신청 마감일이 되자 쫓기는 마음과 자기 선택에 대한 불안, 여기에 부모에게 줄 경제적 부담으로 미안한 마음까지 뒤섞여 눈물로 표현된 것이겠지요.
유난히 사춘기 앓이를 심하게 하던 제 딸은 또 어땠는지 아세요? 3년 전, 중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입니다. 갑자기 손목 안쪽에 ‘化樣年華’(화양연화)란 글자를 타투로 새겨 왔었습니다. 지워지지도 않는 문신을 말이죠. 저는 그 문신을 본 순간 눈앞이 까마득해지면서 쓰러질 듯 아찔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에 문신이라니, 조폭도 아니고 이제 겨우 열 다섯인 여자 아이 손목에 문신이라니! 갑자기 왜? 도대체 겁도 없이 저걸 어떻게? 게다가 학교는 어떻게 가? 선생님이 보면? 동네 사람들이라도 보면?’ 그런데, 그걸 저한테 들킨 아이는 오히려 더 당당하게 자랑삼아 뜻풀이를 해주며 제게 말하는 겁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란 뜻’이라고 말이죠.
아무리 미쳐 날뛴다는 사춘기, 중2병이라지만 그 갑작스러운 상황과 아이의 돌발행동이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 정신적 충격이 좀 가라앉자 속으로 생각했지요. ‘그래. 네 손목에 한 번씩 올라오던 그 분홍줄(비자살성 자해의 흔적) 대신 삶에 대한 행복한 느낌을 떠올릴 수만 있다면.’ 당시 아이는 교우 문제로 다니던 학원도 다 끊고, 날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괴로워하곤 했으니까요.
아이의 사춘기 앓이는 그 후 3년도 넘게 격렬히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눈에 띄게 조금씩 가라앉고 있지요. 그런데 아이에 대한 긴장도가 다소 느슨해지자 이번엔 그 후폭풍이 제게로 찾아온 것 같더군요. 속이 허하고 한없는 무력감. 뚜렷한 이유도 없이 불쑥 눈물이 올라오고, 감정 제어가 안 되는 것이 아이 사춘기 끝에 찾아온 갱년기 시작인가? 싶기도 했지요. 그렇게 우울한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은 정말 이러다 내가 없어질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남편한테 말했답니다. “내 얘기 좀 들어주면 안 돼?” “아, 나 TV 좀 보며 쉬고 싶은데….” 그리고는 내 눈치가 평소와 영 다른 느낌이었는지 TV 리모컨을 내려놓으며 말하는 겁니다. “그래, 말해 봐. 그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내가 요즘 이상해, 이유는 모르겠고. 애 때문에 너무 오래 긴장하고 속 끓이고 힘들어서 그게 쌓여서 그런지, 아무튼 너무 우울하고 힘들어. 최소한 당신은 알고 있어야지. 내가 요즘 이렇다는 걸.”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는 펑펑 울어버렸습니다. 마치 소화되지 않은 채 내 안에 쌓였던 것들이 한꺼번에 서러운 눈물로 쏟아져 나왔던 것 같습니다. 말을 하고 나서인지 그 후로 훨씬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지요. 그냥 밖으로 말만 했을 뿐인데, 말이라도 하는 게 이토록 큰 차이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남편한테 먼저 들어달라고 해서 속의 응어리를 풀어냈지만, 앞서 언급한 새내기 공무원은 어쩌면 그것조차 제대로 못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보통 ‘어느 날 갑자기’라고 표현하지만, 이 말 앞에는 반드시 ‘그러던’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였던 것이지요. 분명 새내기 공무원도, 휴학하고 재수를 결심한 친구의 딸도, 손목에 ‘화양연화’를 새길 수 밖에 없었던 저의 딸도 저처럼 모두 ‘그러던’ 나날이 있었던 것이지요. 다만 그게 나의 일이 아니면, 우리의 무딘 마음이 그 신호를 알아채지도, 들어주지도 못한 것일 뿐.
오늘 우리 아이가 어떤지, 그 마음의 안녕을 한번 물어봐 주시면 어떨까요?
설령 괜찮다고 단답으로 흘리더라도 내일 또 한 번 물어봐 주세요. ‘요즘 어떠냐’고. 부모님도 우리의 아이들도 오늘 하루가 안녕할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글 _ 최진희 (안나)
국문학을 전공하고 방송 구성작가로 10여 년을 일했다. 어느 날 엄마가 되었고 아이와 함께 가는 길을 찾아 나서다 책놀이 선생님, 독서지도 선생님이 되었다. 동화구연을 배웠고, 2011년 색동회 대한민국 어머니동화구연대회에서 대상(여성가족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휴(休)그림책센터 대표이며, 「하루 10분 그림책 질문의 기적」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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