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의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y)신앙은 놀라운 개념이다. 하나이자 셋이고 셋이 하나인 신비로움은 가톨릭 신앙의 정점이다.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이 하나이자 독립적인 개체라는 것은 난해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교리다.
어릴 때부터 이 개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왜 세 개의 개체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개체들이 각각 독립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왜 삼위일체가 중요한 교리가 될 수 있는지 납득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고민은 난데없이 풀렸다. 음악을 접하고 처음 개념을 알았을 때 음악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선율·화성·박자가 하나의 음악이 되고 각각 다른 개체로서 존재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박자가 없는 선율은 맥락 없이 연속된 음들일 뿐이고, 선율 없는 화성은 두 개 이상 음들의 울림일 뿐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삼 요소가 자리를 정립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삼위일체가 표현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출처=Wikimedia Commons
처음 기도문을 읊는 것에 가까웠던 그레고리안 챈트에 완전 5도나 4도로 붙여 부르는 것을 ‘오르가눔(organum)’이라고 한다. 여기에 여성이 교회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 허용된 이후 남성보다 한 옥타브 높은 영역을 차지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오르가눔이 사용되면서 현대의 사성체계(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가 자리 잡게 되었다.
박자의 경우는 더욱 극적이었던 것이, 교회 안에서만 불리던 챈트에 당시 유행하던 세속 리듬을 붙인 모테트(Motet)가 급속도로 일반에게 전파되었던 것이다.
9개의 중세 모테트
https://youtu.be/cu7-RV7XB9k?si=0RlO1kATWpL82sxI
선율과 화성, 박자 중 가장 독립성이 강한 것은 박자다. 고대의 음악을 생각하면 선율과 화성 이전에 아무거나 두들겨도 소리가 나는 물체를 이용한, 박자만을 이용한 음악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모션과 두들기는 소리로만 만드는 음악은 많은 작곡가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21세기에 작곡된 케이지 칸겔로지(Casey Cangelosi)의 작품인 동굴(Cave)은 현대에 아득히 먼 고대 음악을 소환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https://youtu.be/L8X3NQavGSo?si=SaHb7rwRld7vyCjy
아름다운 멜로디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프랑스 작곡가 구노(Charles Francois Gounod, 1818~1893)의 아베 마리아다. 바흐의 평균율 곡집의 상권 1번의 프렐루드는 그 자체로 완벽한 음악이었지만, 여기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멜로디를 얹으면서 불멸의 명곡을 만들어냈다. 음악의 삼 요소가 가장 완벽하게 균형을 맞춘 이 작품을 들으며 오늘도 신앙의 신비를 묵상해본다.
https://youtu.be/wBp6J0v3Reg?si=UELorShLvIW_u1na
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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