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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한국 순교 복자 124위 (5월 29일) | 2024-0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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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한국 교회 신앙 선조인 124위 복자들은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그해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되었습니다. 대표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는 1759년 전라도 진산 장구동의 유명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전주에서 순교한 윤지헌 프란치스코 복자의 형이기도 합니다. 본디 총명한 데다 품행이 단정했던 윤지충은 일찍이 학문에 정진해 1783년 봄 진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 무렵 고종사촌 정약용 요한을 통해 천주교 신앙을 알게 되었으며, 이듬해부터 스스로 교회 서적을 구해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3년 동안 교리를 공부한 그는 1787년 인척인 이승훈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후 윤지충은 어머니와 아우 윤지헌 프란치스코, 외종사촌 권상연 야고보 복자에게도 천주교 신앙을 전했습니다. 또 인척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복자와 널리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했습니다. 권상연은 1751년 진산의 유명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디 그는 학문에 정진했지만, 고종사촌인 윤지충에게 교리를 배운 뒤 기존 학문을 버리고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때가 1787년 무렵입니다. 이들은 1790년 북경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 교회에 제사 금지령을 내리자, 이 가르침을 따르고자 집안에 있던 신주를 불살랐습니다. 이듬해 여름, 윤지충의 어머니가 선종하자 천주교 예절에 따라 장례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이는 어머니의 유언이기도 했는데,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조정에까지 전해져 진산 군수에게 이들을 체포해 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초기 진산 군수는 이들에게 배교를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절대로 신앙만은 버릴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여러 차례 회유에도 태도가 변하지 않자, 결국 진산 군수는 이들을 전주 감영으로 이송했습니다. 이들은 이튿날부터 온갖 문초를 받으며 다른 신자들의 이름을 말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죽음을 각오한 이들은 단호했습니다. 전주 감사는 할 수 없이 최후 진술을 받아 조정에 보고했고, 이들은 처형됐습니다. 친척들은 9일 만에 이들과 동료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시신들은 조금도 부패한 흔적이 없었고, 형구에 묻은 피가 방금 전 흘린 것처럼 선명한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합니다. 이후 교우들은 여러 장의 손수건을 순교자들의 피로 적셨으며, 그 가운데 몇 조각을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냈습니다. 당시 병으로 죽어가던 사람들은 이 손수건을 만지고 나았다고 합니다. 윤지충의 순교일은 12월 8일이지만, 이날은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기에, 전주에서 많은 순교자가 치명한 5월 29일이 기념일이 됐습니다. 한국 교회는 순교자 현양을 위해 이날을 성대히 지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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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5-22 오전 10:52:13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