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운 신부가 원광대학교 치과대학 캠퍼스 미사에서 학생들과 대화하고 있다.
찾아가는 사목
강의실·동아리방·식당 등서
학생들 이야기에 귀 기울여
사목의 씨앗 열매 맺다
신앙 모임 전무했던 원광대
학생 50~60명 활동
가톨릭교수회도 탄생
캠퍼스 미사 수시로 봉헌
본당 신자들도 공감·동참
시험기간 카페 24시간 개방
운영기금으로 학생들 지원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에제 34,11)
목자가 양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양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아니,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양들에게 좋은 풀과 깨끗한 물을 먹이고, 양들을 보호할 울타리를 만들어 안전하게 지켜주는 일. 양 떼를 돌보는 목자의 일이다.
전주교구 신동본당 주임 백승운 신부가 그렇다. 그는 본당 울타리에 있는 신자들에게 온 마음을 쏟으면서도 동시에 대학교라는 울타리까지 찾아 청년 양 떼를 위하고 있다. 청년들이 있는 곳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꺼이 달려간다. 청소년 주일(5/26)을 맞아 청년들과 함께 살아가는 백 신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양들이 모인 곳
지난 3일 전북 익산의 원광대학교 치과대학. 강의실이 강의 대신 미사 준비로 분주하다. 치과대학 가톨릭동아리 ‘로사리오’를 위한 캠퍼스 미사가 있는 날이다. 학생들이 속속 도착했다. 백 신부가 미사를 기다리는 한 학생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혹시 고해성사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 신부가 말했다. “죄인은 따라오도록 하여라!”
그 순간 학생이 웃음을 터트렸다. 학교에서 미사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특별한데, 고해성사에 사제의 유머까지. 백 신부가 평소 학생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 학생들은 사제를 향해 어떤 마음이 들지 느껴진 모습이다.
미사에는 신동본당 수도자들도 함께한다. 수도자들은 학생들이 강의실에 속속 도착할 때마다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환한 웃음으로 맞았다. 그리고 한참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런데 미사가 시작되자마자 성가에서 불협화음이 나왔다. 그래도 강의실은 웃음바다다. 백 신부가 이내 기타를 직접 연주하며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학생들 목소리에도 더 힘이 실렸다. 금요일 저녁임에도 이날 미사에는 재학생 14명과 졸업생 1명, 교수 1명 등 16명이 참여했다. 청년들과 함께하기 위한 백 신부의 의지와 초대, 학생들의 이끌림이 아니었으면 대학교 곳곳에서 수시로 봉헌되는 캠퍼스 미사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백승운 신부가 원광대학교 치과대학 학생들과 캠퍼스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청년들과 함께 걷다
백 신부는 2021년 1월 신동본당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관할 구역 내 원광대학교 사목을 시작했다. 코로나로 교문을 걸어 잠갔던 학교도 그해 가을쯤 다시 문을 열었다. 애초에 가톨릭학생회나 가톨릭동아리·성서모임이 아예 없었던 데다 코로나 여파까지 겹쳐 학생들과 함께하기 쉽지 않았던 터였다. 그러다 지난해 2학기부터 캠퍼스 미사를 시작했고, 백 신부가 뿌린 사목의 씨앗이 열매를 맺어 학교 곳곳에 신앙 모임이 생겼다.
현재 토마스 모어(로스쿨)·밀알(의대)·로사리오(치대)·한처음(한의대)·피앗(가톨릭학생회)·사니타스(원광보건대), 연합밴드 모임 ‘원밴’ 등 학생 50~60명이 활동하고 있고, 지난 2월에는 의대·치대·한의대 교수들로 구성된 원광대 가톨릭교수회도 탄생했다. 백 신부의 관심과 사랑으로 학교가 신앙으로 물들고 있다.
백 신부는 3월부터 매주 토요일 인근 장애인 거주시설인 ‘작은 자매의 집’을 찾아 학생들과 봉사도 하고 있다. 신앙에 다가가는 여러 길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면서 받는 위로가 있거든요. 신앙에 더욱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학교 봉사 시간에도 보탬이 되고요.” (웃음)
백 신부가 대학사목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이보다 훨씬 전인 2015년 1월 덕진본당 주임으로 부임하면서다. 당시 교구는 전북대학교를 관할하는 덕진본당을 ‘청년 사목 중점본당’으로 지정하고자 백 신부를 파견했다. 백 신부는 1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부임 1년 후부터는 본당과 전북대학교를 오가며 학교 현장에서 미사 전례와 성사로 청년들이 하느님과 가까워지도록 도왔다. 학생들과 거리낌 없이 대화하며 삶과 신앙이 연결되도록 돕는 백 신부의 청년 사목 노하우도 벌써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원광대학교 학생들이 작은자매의집에 거주하는 청년들과 함께 나바위성지를 방문했다. 한 학생(오른쪽)이 작은자매의집 거주 청년과 함께 달리기를 하고 있다.
청년들은 없지 않다
“교회 심포지엄에 가보면 늘 ‘젊은이들이 없다’고 하잖아요. 그냥 자리에 앉아서 청년들이 안 온다고, 없다고만 해요. 왜 없어요? 대단히 많아요. 청년들이 있는 데로 가야죠. 낚싯대만 놓고 왜 이렇게 고기가 없느냐고 할 게 아니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야죠. 사목자들이 움직이고 나가야 합니다.”
백 신부는 “청년들이 오길 기다리는 교회가 아닌, 청년들의 공간과 시간으로 들어가는 교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제가 캠퍼스 곳곳을 다니며 학생들의 공간을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백 신부는 제의 가방을 들고 ‘똑똑’ 문을 두드린다. 강의실·동아리방·학생 식당·캠퍼스 잔디밭 할 것 없이.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청년들에게 경청하는 모습은 의견을 먼저 묻는 백 신부의 화법에서도 나타난다. “~하라”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먼저 건넨다.
백 신부의 ‘청년 사목’에는 본당 신자들도 함께한다. 본당 관할구역 내 대학교와 학생들을 함께 챙겨야 한다는 데에 신자들도 공감하고 동참하는 것이다. 본당 카페도 시험 기간 중엔 학생들에게 24시간 개방하고 있다. 카페 운영기금으로도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다. 본당 성심회와 여성회도 큰 힘이 된다. “특수한 사목을 하는 게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하는 사목입니다. 전국에 대학을 관할하는 모든 본당 사목자가 이러한 마음으로 학교를 찾는다면 교구도 큰 일을 할 필요가 없겠죠.”
양들을 찾아서
주님의 이끄심으로 학생들과 함께해온 10여 년. 백 신부와 교류하는 신심 깊은 청년들도 많아졌다. 2015~2019년 사목하며 세례를 베푼 청년은 124명에 이른다. 2015년 덕진본당 주임 시절부터 지금까지 전북대학교와 원광대학교 학생들 마음 안에 자리한 신앙의 불꽃을 되살리는 역할을 한 것이다.
백 신부는 “청년들을 만날 때 조건 없는 환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환대가 없으면 청년들이 ‘내 본당’이란 느낌을 받지 못하고 결국 교회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대→관계 형성→양성→파견으로 청년들과 함께한다.
백 신부는 예비자 교리교육도 직접 한다. 청년들의 말투, 유행어, 좋아하는 음악 등 그들과 발맞춰 걷기 위해 입교 전부터 함께하는 것이다. 백 신부는 “대학사목은 곧 찾아가는 사목”이라며 “공간적 이동을 넘어 결국 젊은이들을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보통 교회나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이들, 학생들을 섣불리 진단하지 마세요. 밖으로 안 나가려고 하는 교회와 사목자들을 먼저 돌아보고 진단해야 해요. 사목자들은 특별한 일을 하려 하기보다 상황에 맞게 자신에게 맡겨진 사목을 하면 됩니다.”
‘신앙 공동체’, ‘위로’. 백 신부가 청년들과 함께하는 두 가지 이유다. 젊은이들은 누가 뭐래도 신앙 공동체의 일부이며, 교회는 그들에게 위로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본당이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재차 일깨웠다.
“아이들이 졸업해서 떠날 때 같이 밥을 먹거든요. 하느님 이야기를 그때 해요. ‘하느님께서 저를 여기 보낸 이유는 신부님, 그리고 이웃, 주님인 당신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요. 청년 때의 신앙체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크나큰 보물입니다. 그 기억은 이들이 언젠가 나이 들어 지쳐 쓰러질 때 그들을 구원해줄 겁니다. 그 기억을 심어주는 것만으로도 저는 성공한 거예요.”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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