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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은 몽골의 많은 이에게 빛이 되고 있습니다” 2024-05-22

[몽골 민경화 기자] 몽골에 가톨릭교회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1992년이다. 원죄 없으신 성모 성심 수도회(CICM) 선교사 로버트 신부와 웬체슬라오 파딜랴 신부, 길버트 신부가 울란바토르 시내의 한 호텔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며 몽골 선교의 시작을 알렸다. 첫해 20명의 몽골인 영세자가 나왔지만, 국민의 50% 이상이 라마교를 믿는 몽골에서 가톨릭이 자리를 잡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350만 인구 중 가톨릭신자는 1400여 명.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 수는 이보다 적지만 몽골 울란바토르지목구장 조르고 마렌고(Giorgio Marengo) 추기경은 “몽골교회는 귀중한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몽골 신자들의 헌신적인 믿음을 이끌어 낸 선교사로 고(故) 김성현(스테파노) 신부를 지목했다. 척박한 땅에서 선교 사명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두 성직자가 그린 몽골교회의 미래는 무엇이었을까.



■ 급격한 사회변화 속 몽골에 남은 작은 양떼


사회주의국가였던 몽골은 1992년 자본주의를 도입하면서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었다. 유목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물든 젊은이들은 전통과 문화를 잃어갔다. 자본주의의 토대가 없었던 상황에서 생긴 급격한 변화는 부의 공평한 분배를 막았다. 뒤틀린 자본주의는 가난한 이들의 숨통을 조였고 몽골 국민 3분의 1은 빈곤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교회가 몽골에 선교의 씨앗을 뿌린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가난한 이들과 복음 안에서 동행하기 위해서다. 1991년 교황청이 몽골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뒤 2002년 울란바토르지목구가 설정되면서 적극적인 복음화 활동을 펼쳤다. 2016년 첫 몽골인 사제가 탄생했고 2021년 대전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은 산자 자브 신부는 현재 몽골 울란바토르의 성 베드로와 바오로 주교좌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김성현 신부가 몽골에 뿌린 복음의 씨앗은 산자 신부라는 값진 열매를 맺고 몽골교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조르고 마렌고 추기경은 2003년 몽골에 도착했다. 동양문화가 익숙하지 않았을 29살 젊은 사제에게 몽골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을까?


“1990년대 초반 정치 상황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몽골인들은 사회 전반의 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당시에도 혼란스러운 상황은 계속됐죠. 혼란스러운 가운데 있었던 교회는 아주 작은 양 떼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헌신적이면서 열정적으로 믿음을 이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몽골교회 믿음이 가진 힘이 보편교회에 귀중한 선물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적으로 척박한 가운데서도 열정과 기쁨을 다해 신앙생활을 하는 몽골 신자들은 이방인 사제에게 “복음 선포를 향한 신선한 열정”을 선물했다. 그리고 몽골 선교 여정에 동행하고 있는 한국인 사제들, 특히 김성현 신부는 마렌고 추기경에게 각별한 존재로 남았다.


신자 극소수 몽골에서 복음화에 대한 새로운 답 찾으려 노력한 참 사제
공동체 안정 후 신자 없는 초원으로 다시금 뛰어든 헌신 배워야
“선교는 가난 속에서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전 말씀  가슴에 새겨
 



■ 복음을 산 목자, 몽골 교회에 빛이 되다


마렌고 추기경보다 3년 먼저 몽골에서 선교하고 있었던 김성현 신부는 몽골인들 삶 속에서 복음을 실천하며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있었다.


“몽골 사람들은 상대가 진심인지 아닌지 아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그런 사람들이 김성현 신부님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온 것은 그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겠죠. 제가 처음 본 김성현 신부는 복음에 헌신하고 복음을 따르는 삶을 산 사제였습니다.”


4년간 애써서 항올 성모승천성당을 건축한 김성현 신부는 도심에서 200km가량 떨어진 초원 지역인 에르덴산트로 보내달라고 당시 지목구장에게 청했다. 안정적인 공동체가 꾸려진 상황에서 신자가 없는 초원으로 가겠다는 김 신부의 결정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김 신부님은 몽골의 형제자매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려고 결정한 것이죠. 에르덴산트에서 김 신부님을 만나 나눈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선교는 가난 속에서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우리가 어떻게 몽골 신자들이 삶 속에서 신앙을 표현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는지 논의를 한 경험은 참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김 신부님은 이미 알거나 도착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항상 현실에 도전하면서 복음화에 대한 새로운 답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기보다 그들 안으로 들어가 복음적인 삶을 살았던 김 신부는 “예수를 믿으라”는 말을 하지 않고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그의 선교사로서의 역량을 눈여겨본 마렌고 추기경은 지목구장이 된 뒤 2020년 김 신부를 총대리로 임명했다.


“선교 사제에게 중요한 요소는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진정한 증인이라는 진정성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성현 신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신 분입니다. 그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은 가슴 아프지만 그가 보여준 위대한 증언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삶은 오늘도 몽골의 많은 사람들에게 빛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 조르조 마렌고 추기경은
이탈리아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출신이다. 1974년 태어나 2001년 사제품을 받았다. 2006년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선교학 박사 학위를 받고 2003년부터 몽골 선교를 시작했다.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아시아지역 참사 겸 몽골 지부장, 몽골 아르바이헤르 자비의 모후본당 주임으로 활동했고 2020년 몽골 울란바토르지목구 제2대 지목구장에 임명됐다. 2022년에는 몽골교회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지목구는 선교지에 설립되는 지역교회 조직으로 교계 조직의 첫 단계다. 19세기 중반 생겨난 형태로, 독립된 교구와 달리 그 지역 선교를 맡은 선교회 또는 수도회의 일원에게 교황의 이름으로 지목구를 통치할 대리직권이 맡겨진다. 지목구장은 교구장 주교와 법률상 동등시되며, 주교좌 대신 준주교좌(Pro-cathedra)를 갖는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05-22 오전 10:12:13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