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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오광섭 작가 2024-05-22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탈렌트


어릴 때부터 미술 시간이 제일 즐거웠어요. 무언가 만들고 표현하는 게 좋았어요. 나이를 더 먹고 대학교 진학을 선택할 때까지도 제일 자신 있는 부분이 미술이었어요. 아마도 제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아버지께서는 일반 회사를 다니셨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시고 참 잘 그리셨어요. 제 미술 숙제도 많이 대신 해주셨죠. 특히 밀린 방학숙제는 아버지께서 다 해주셨어요.


그렇게 대학을 조소과에 입학했어요. 대학 생활은 조형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새로운 것을 찾았던 저의 목마름은 해결해 주지 못했어요. 그래서 더 큰 세계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탈리아 유학길에 오르게 됐어요. 이탈리에서 작가들의 스튜디오와 주물공장, 돌공장을 두루 찾아다니며 많은 경험을 했어요.


특히 한 주물공장에서 밀랍 주조법을 배웠어요. 보통 작품은 점토로 작품을 만들고 이후 틀을 만들어 구리 물이나 쇳물로 주조를 해요. 그런데, 밀랍 주조법은 점토보다 더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붙였다 떼어내고, 자르고 지지고, 가늘게 혹은 굵게 마음대로 세세한 표현까지 가능한 밀랍 주조법에 매료됐죠. 조형에 대한 무한한 승부욕을 가졌던 그 시절 나에게 돌파구를 찾아준 참말로 고마운 재료였어요.



나의 교만함을 깨우쳐 주신 주님


대학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종교가 없었어요. 그런데 독실한 가톨릭신자였던 형수님께서 저희 집안에 시집을 오셨어요. 이후로 어머니를 시작으로 가족들이 다 세례를 받았어요. 저는 이탈리아 유학 시절에 세례를 받게 됐어요. 아내와 함께 유학길에 올랐는데, 로마 공항에서부터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당시 공항에서 페루자로 가야 했는데, 말도 안 통하고요. 


현지에 사시던 한국 분의 도움을 받았는데, 고광호(안드레아) 선생님이라고 그곳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가이들 활동을 하던 분이었어요. 그리고 이분을 통해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학하시던 신부님들을 알게 됐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아시아 선교 활성화를 위해 아시아 신자들에게 직접 세례를 주셨는데, 우연찮게 제가 선정돼서 속성으로 예비 신자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았어요. 교황님께 세례를 받다니 참 영광이었죠.


귀국해서는 나름 독자적인 작업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어요. 가톨릭미술가회에서 활동하지도 않고 저만이 순수미술 작품활동 했어요. 혼자서 개인 작업을 하고 작품 발표도 주로 개인전으로 하고요. 국전이나 이런 데에도 출품하지 않았어요. 이름도 좀 알리게 되니 자만했던 거죠. ‘내 작품을 보고 싶으면 개인전으로 와라’ 식으로요. 이런 사회적 성공이 전부인 줄 알았어요.


교회미술 쪽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1989년 서울 석촌동본당의 주임이었던 한영석(라우렌시오) 신부님이 본당 성모상 제작을 의뢰하셨어요. 처음 성미술 작품을 하는 거라 여기저기 성모상들을 알아보는데,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외국인의 모습에 팔등신의 모습인 거에요. 그래서 저는 한국인의 얼굴에 6등신 정도의 도안을 만들어 신부님께 보여드렸어요. 


신부님께서는 깜짝 놀라시더니 ‘그냥 놓고 가라’고 하시더군요. 그러고는 며칠 뒤에 ‘해보자’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성모상을 만들어 봉헌했는데, 나중에는 그 성모상이 없어졌더라고요. 신자들의 정서에 맞지 않았던 거죠. 그 이후로 성미술은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이 아니라 신자들과 교감이 되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느님께서 저의 교만함을 꾸짖으신 거였죠.



다양한 성미술 작품 나와야


이후로 서울 논현2동성당 성당 입구 청동문과 십자가의 길을 의뢰받아 제작했어요. 이 성당 십자가의 길은 신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했어요. 논현2동성당은 하느님의 자비를 콘셉트로 지어졌는데요, 제대 뒤에는 ‘하느님의 자비’ 성화가 놓여 있어요. 그래서 청동문에도 하느님의 자비를 표현했어요. ‘간음한 여인’을 주제로 문을 만들었죠.



서울 아현동성당 천장 조명 프로젝트를 의뢰받았을 때인데요. 아현동성당은 팔방형으로 지어졌고, 성당 지붕이 꽤 높았어요. 생각해 낸 것이 묵주 콘셉트였어요. 조명을 묵주알처럼 만들고 제대의 십자고상을 묵주의 십자가에 연결시켰죠. 그런데 알고 보니, 아현동성당 주보성인이 묵주기도의 성모였어요. 나중에 알고 정말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성미술 활동은 그 이후로도 꾸준히 이어졌어요. 서울 종로성당 리노베이션의 감독했고, 춘천 죽림동주교좌성당에서는 야외 십자가의 길과 예수성심상을 제작했어요. 최근에는 서울 화양동성당에 예수승천상과 십자가의 길, 제단을 봉헌했어요.


요즈음 성미술 작품을 보면 예전보다는 훨씬 좋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외국 작품들을 답습하려는 작가들이 보이기도 해요. 성미술의 주제나 소재같은 것들이 한정돼 있기도 하고요. 우리는 보통 성미술이라고 하면 성모상이나 십자가상, 예수성심상 등이 대부분이죠. 그런데 외국의 성당을 보면 예수님의 공생활에 대한 다양한 작품들이 있잖아요. 우리도 이런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그리고 성당을 계획할 단계에서부터 성미술 작품도 함께 고려하면 좋겠어요. 성물이 들어감으로써 성당이 더 풍요로워져야 해요. 일단 건물을 다 지어놓고 십자가의 길이나 제단, 십자고상을 끼워맞추듯 하는 일은 지양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작가들도 성물은 신자들을 신앙으로 채워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는 신앙인의 마음으로 작품 활동에 나섰으면 좋겠어요.



◆ 오광섭(다미아노) 작가는
1955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1982년 홍익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1985년 카라라 미술아카데미 조소과를 졸업했다. 1982년 첫 개인전을 연 이래 2019년 성미술 작품전까지 9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밀랍 주조기법을 통한 섬세한 조각 표현으로 독자적인 작품을 내놓고 있으며, 서울 논현2동성당 청동문, 서울 아현동성당 묵주 조명등, 춘천 죽림동주교좌성당 예수성심상 및 예수부활상, 서울 화양동성당 예수승천상 등을 제작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05-22 오전 9:12:11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