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는 생소한 나라이다. 하지만 간절한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2017년의 기억 때문이다. 그해. 한여름과 늦가을. 나는 말라위와 로마를 연이어 가게 됐다. 회사 출장과 개인 여행이었다. 연결고리가 없었던 릴롱게와 로마는 가짜 크리스찬으로 살던 내게 큰 충격이었다.
시작은 말라위였다. 아프리카 출장. 거기다 말라위는 시니어 방송인에게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도전과 미지의 영역이었다. 마음이 끌렸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태풍으로 비행기가 연착되고 7개국 공항을 전전한 뒤 사흘 만에 릴롱게 공항에 도착했다. 힘들게 가게 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촬영 사흘째, 오후였다. 오전 촬영이 끝나자마자 PD가 다른 지역에 가자고 했다. 흙길을 달려서 도착한 벌판 한가운데 허름한 건물이 하나 보였다. 그냥 가서 문을 열라는 말에 방송인의 촉이 살짝 발동됐다. 아! 뭐가 있나 보다.
PD의 신호에 맞춰 헛간 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엄청난 노래가 쏟아졌다. 소름이 돋았다. CCM이었다. 말라위를 가기 전 한국에서 자주 들었던 찬송가였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좁고 작은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던 사람들은 전부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수백 명의 고아나 과부, 미혼모들이 아침부터 한국에서 온다는 어떤 손님을 위해 쪼그리고 앉아서 굶은 채 몇 시간을 기다렸던 것이다.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과 몸짓은 진짜였다. 갇히고 굶주린 상황에서도 손님을 기뻐하는 얼굴과 몸짓에 거짓이 전혀 없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3절의 말씀은 살아있었다.
그해 가을. 같은 교회를 다니는 영민한 자매 한 명과 이태리 로마를 가게 됐다. 바울이 갇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감옥과 순교 현장, 무덤을 차례로 찾았다. 그런데 다닐수록 기대했던 울림이 생기지 않았다. 여정 마지막에 성계단 성당(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서 십자가형을 선고받았을 때 올라갔던 계단으로 알려진 계단)을 찾았다. 분명 예수님이 오르셨다는 엄청난 계단인데 이상하게 슬프지 않았다. 눈물은 몇 방울 나왔지만 헛헛했다. 로마 바울의 유적지와 비슷했다. 로마의 휘황찬란한 성당에서 성령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나의 부족한 신앙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해 릴롱게보다 로마에서 예수님을 더 느꼈다면 나는 지금쯤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성령은 엄청난 자원과 유물을 갖고 있는 러시아가 아니라 사람의 온기가 아니면 버틸 수 없는 우크라이나의 피난 막사에 계시다는 것을 강하게 믿는다. 예수님은 릴롱게의 외지고 허름한 헛간 안, 고아와 과부들 곁에 계셨다. 나는 그것을 분명히 보았다.
글 _ 최영주 (SBS 아나운서)
SBS 1기 공채 아나운서. 1997년 한국방송대상 여자 아나운서부문, 2009년 한국아나운서대상시상식 대상을 수상했다. 2018년 12월부터 SBS 아나운서팀 팀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SBS 러브FM 최영주의 아침 편지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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