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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장애’라는 말에 담겨 있는 다양성(김성우 신부, 청주교구 가톨릭사회복지연구소 소장 ) 2024-05-22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2021년 8월 2일에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같은 해 8월 24일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대한 분석과 대응 방안’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으며, 10월에는 당사자의 장애 특성과 생애 주기 등에 따른 선택권 보장, 그리고 실효성 있는 지원 방안을 수립하는 내용을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장애인 복지 분야에서 사목하면서 정부의 정책이나 사회적 인식이 ‘장애’ 다양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지 못한 현실을 자주 느낀다.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은 ‘장애’를 15가지의 유형으로 나눈다. 이 중 지체장애를 비롯한 12가지 유형은 ‘신체적 장애’로, 그리고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정신장애 등 3가지 유형을 묶어 ‘정신적 장애’로 크게 구분 짓는다. 장애 유형에 따라 당사자들은 각기 다른 어려움을 지니고 있으며, ‘장애’라는 한 단어로 이러한 어려움을 모두 담아내기에는 불가능하다.

2023년 보건복지부 통계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5.1%에 해당하는 264만 2000여 명이다. 전체 비율로 보면 지체장애인이 전체의 43.7%로 가장 높다. 반면 대표적 정신적 장애로 알려진 발달장애(지적·자폐)는 10.3%다. 하지만 해당 등록장애인을 65세 이하로 기준을 바꾸면, 발달 장애인의 비율은 21.2%로 늘어난다. 이는 등록장애인 중 65세 이상의 고령 장애인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 비율(53.9%)을 차지하며, 선천성 장애(9.5%)보다 후천적 장애(90.5%)가 압도적으로 높은 현실이 반영된 결과로 여겨진다.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장애라는 큰 틀에서의 구분만 놓고 보더라도, 장애 당사자의 욕구나 이들에 대한 지원방식은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장애’ 안에는 다양한 상황들이 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은 이러한 다양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단계적으로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분들을 지역 사회로 독립시키겠다는 일방적 입장만 밝히고 있다. 탈시설 대상은 현재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3만여 명의 장애인들이다. 이들 중 대략 80%는 중증 발달장애인들이고, 이 분들의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분들에게 공간적인 분리에만 초점을 맞춘 탈시설 정책은 과연 당사자를 위한 정책인지 의구심이 든다. 한국 천주교회의 즉각적인 대응과 노력으로 탈시설 정책은 다행스럽게도 용두사미(龍頭蛇尾)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폐지되진 않았다. 또한 탈시설을 악용하여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려는 이들의 탈시설 시행 압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 실천의 원칙을 ‘착한 사마리아인의 원칙’이라 말한다. 강도를 만나 길에 쓰러져 있는 이웃을 지나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가 필요한 도움을 준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지금 고통받는 이를 섬기려면 당사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 안에 언제나 함께하였던 장애 당사자에게 하느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서, 자기 집단이나 ‘나’의 이익을 위한 접근이나 서비스 제공자의 일방적인 자세가 아니라 바로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고민하고 나누는 문화를 기대해본다.





김성우 신부
[가톨릭평화신문 2024-05-22 오전 7:52:06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