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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적 신앙과 헤어질 결심과 성찰 2024-05-22


최근 ‘시노드적 양성’이란 주제로 신학교에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한국 교회가 시노달리타스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목격하며, 시노드적 교회를 위한 쇄신과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양성’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신앙인 양성이 세상의 일반적인 양육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과정이며, 신앙인 자신이 자발적인 주체여야 한다는 점이다.

‘양성(formatio)’은 ‘교육(educatio)’과 다르다. 교회에서 교리교육·신자 재교육·신비교육 등 ‘교육’이란 말을 많이 쓰지만, 실제로는 ‘양성’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교육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실제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자녀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 나는 다시 산고를 겪고 있습니다.”(갈라 4,19)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것이다. 양성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전달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형성(formatio)되는 것이다.

양성에서 자기 주도성과 자발성은 매우 중요하다. 나를 양성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지만, 우리의 자발적인 참여가 동반되지 않으면 진정한 양성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렇기에 “나는 나를 양성한다”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길었던 코로나를 통해 우리들의 자율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인 신앙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떤 독서모임에서 한 자매님의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집이나 사회에서는 나의 의견과 뜻을 자신 있게 표현하는데, 왜 성당에만 오면 주눅이 들고 움츠러드는지 모르겠어요.” 그만큼 교회 안에서 신앙의 주체로 살아가도록 양성받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는지. 양성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과정인데 한 번의 예비자 교리나 견진 교리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는지. 혹은 교리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서 스스로 신앙을 살아가는 법까지 전해주지 못한 것은 아닐는지.

그렇기에 신앙인 양성은 ‘자유의 양성’이어야 한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역량,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스스로 자기 삶을 영위하고 책임을 지는 역량의 양성이어야 한다.

그러한 양성은 수동적인 신앙과의 결별을 요구한다. 그동안 순종을 잘못 이해한 나머지, 가르쳐주는 대로 믿고, 알려주는 대로 알아듣고,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어린아이는 커가면서 부모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모님이 나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모의 역할은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하는 자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고, 특히 교회 가르침에 담긴 가치와 의미를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는 것이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자기 주도적 양성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살아온 삶과 신앙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반성은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아닌,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해하고 공감하며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고 주님께 채워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나의 신앙을 어떻게 살아왔나? 나의 주도적·자발적 신앙을 위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한민택 신부
[가톨릭평화신문 2024-05-22 오전 7:32:06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