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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미사 집전 때 순교의 은총 청한 유스토 신부 2024-05-14
윤영선 작 ‘성 브르트니에르 유스토’

출 생 | 1838년 프랑스 디종(Dijon)

순 교 | 1866년(28세) 새남터 / 군문효수

신 분 | 신부




조선 사람 영혼 구하기 위해 선교 자원

오순절 ‘성령의 강림’은 천상으로 가는 교회의 시작이다. 두려움에 떨던 사도들이 다락방을 뛰쳐나와 용기 있게 복음을 선포한 사실은 성령께서 교회에 내리시는 은혜를 짐작하게 해준다. 더욱이 해마다 성당에서 뽑는 성령 강림 대축일 ‘칠은 뽑기’를 받아들 때면 한국 천주교회가 성령의 특별한 은총 안에 있었음을 확신하게 된다. 선교사도 없는 현실에서 하느님을 알고(통달) 두려워했던(두려워함) 선조들은 신앙의 분별력(의견)을 가지고 죽음을 각오한 항구함(굳셈)으로 환난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박해가 극심하던 그 시절, 이 땅에 오순절의 사도들처럼 지구 반대편 젊은이에게 불같은 용기와 복음에 대한 열정을 일으키신 섭리도 같은 성령의 손길이었다. “이 나라가 바로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곳입니다.” 프랑스인 사제 유스토의 말씀은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뜻을 헤아려(슬기) 자녀다운 효성으로 살아가겠다는(효경) 다짐이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곳에서 이루고자 했던 소망이란 수품 후 첫 미사 때 청했다는 순교의 은혜였다. 그 소원은 오래지 않아 실현되었다. “나는 조선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이 나라에 왔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죽겠습니다.” 박해자에게 행한 선언처럼 그는 1866년 3월 7일 새남터 형장에서 참수되었다. 그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5대손 강진수 신부 부르신 성령의 은혜

유스토 성인의 후손 가운데 강진수(본명 Jean Crinquand) 신부가 있다. 강 신부도 외가의 5대조 할아버지 유스토 순교자처럼 한국의 선교사가 되어 40년을 살았다. 생전에 200회가 넘는 헌혈을 하고, 많은 곳에 전통적인 방법으로 우물을 찾아준 인물이다. 순교의 피를 흘리지는 않았으나 가난한 한국 백성을 위한 다른 방식의 순교자 또 다른 모양의 위로자가 되고자 했던 게 아닐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실 성령이 파라클리토(Paracletos, 보호자·위로자·협조자·변호자)라고 하셨다. 유스토 신부를 순교자로 불러주시고 강 신부를 백성의 위로자로 삼으신 성령의 은혜가 우리 교회에 이토록 충만하다.



소망처럼 순교로 하느님의 영광 현양

랑페르 드 브르트니에르 유스토(Ranfer de Bretenieres Justus) 성인이 순교하신 서울 새남터성지를 방문하였다. 그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는 성지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키가 크고 곱슬거리는 옅은 밤색 머리에 얼굴이 맑고 부드러우며 묵상과 사색에 잠긴 듯 선한 눈매를 가진 성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새남터성지 지붕 위로 손에는 성경을 고이 잡으신 채 하느님 나라의 영광과 기쁨을 바라보고 계신 성인의 모습이 느껴졌다. “브르트니에르 유스토 성인이시여~ 당신의 성덕으로 저의 세상 욕심과 걱정들을 잠재우고, 성령의 이끄심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가톨릭평화신문 2024-05-14 오후 5:12:10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