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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순의 ‘일초’ 영성살이를 그리며 2024-05-14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찬미받으소서」를, 2023년 「하느님을 찬미하여라」를 발표해 기후위기 시대에 새로운 삶과 문명의 전환을 이룰 것을 요청한다. 이 상황에서 주목할 가톨릭 신앙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장일순(요한 세례자)을 들 수 있다. 그는 1928년 원주에서 나서 1994년 5월에 귀천했다. 올해로 그가 하늘나라 시민이 된 지 30년이 된다.


장일순은 1940년 세례를 받았는데, 이 땅의 종교 전통에 열려 있던 그는 ‘걷는 동학’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동학에 정통했다. 특히 해월 최시형의 사상과 생애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불교 전통은 물론 유학과 노장사상에도 밝았다. 그런 가운데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 고(故) 지학순(다니엘) 주교와 사회 복음화를 이뤄 갔던 그는 스스로 ‘예수쟁이’라고 할 만큼 가톨릭 신앙을 깊이 내면화해서, 한국 가톨릭 그리스도인의 존재 지평을 통합 생태적으로 심화시켜 살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께서 소중한 책을 쓰셨고, 이 책의 글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피조물들”이라고 말한다.(「찬미받으소서」 85항) 하느님은 이 책으로 당신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선함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신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감사와 찬미로 관상해야 하는 기쁜 신비다.(12항)


장일순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一草之中聖父在矣.”(일초지중 성부재의) “풀 한 포기 안에 성부 계시네.” 장일순은 여기서 하느님을 ‘성부’로 표현한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Π?τερ: ‘아버지’로 시작하는) 기도에 충실한 그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창조된 모든 존재의 ‘공동 원천’(un’origine comune)에 근거해서 풀과 벌레를 ‘형제’ 혹은 ‘누이’로 불렀다.(11항) 교황은 이런 전통을 이어받아서 ‘우주적 가족’(universal family)(89항)과 ‘우주적 형제애’(universal fraternity)(228항)를 살아 가자고 요청한다. 하느님에게서 창조된 모든 존재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돼 ‘우주의 일부로서’(89항) 그분의 숨으로 사는 인간과 함께, 하느님의 계시체요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성전이요 하느님의 가족이다.


한 하느님에게서 와서(공동 원천, 11항) 하느님을 공동 도착점(a common point of arrival, 83항)으로 갖는 모든 존재는 이 ‘공동성’으로 하여 서로 하나로 이어져 있다. 교황은 이것을 “한 하느님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89항)고 표현한다. 장일순은 무위당(无爲堂)이라는 호와 함께 ‘일초’(一草)나 ‘일속자’(一粟子), 우리말로 ‘하나의 풀’이나 ‘조한알’이라는 호를 쓰면서, 이같은 존재의 상호성을 선언한 적이 있다. 그런 그가 1984년 봄에 자신을 ‘치악산 사람’으로 지칭하며 화폭 아래 왼쪽에 난들을 그리고 위쪽 공간에 글을 쓴 한 서화에서 이 ‘서로 이어져 있음’을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달이 나이고 해가 나이거늘 분명 그대는 나일세.”


원주교구 태장1동성당에 모셔져 있는 성모님은 왼손으로 지구를 들고 계신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과 성모님 안에서 모두 하나의 지구 위에서 하나로 이어진 존재로 사는 것인데, 이것은 ‘너는 이어진 나’이고, ‘나는 이어진 너’라는 것을 말한다. 장일순은 이 통합생태적 진리를 30년도 더 전에 저렇게 아름답고 따뜻하게, 그러면서도 강력하게 교회와 사회에 선물했다. 이 기후위기 시대에 그의 ‘일초’ 영성과 ‘그대는 나일세’ 영성이 우리 교회와 사회에서 생태적으로 좀 더 깊게 내면화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글 _ 황종열(레오) 가톨릭꽃동네대학교 석좌교수


 

[가톨릭신문 2024-05-14 오후 1:12:09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