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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그라비티 뒤에 감춰진 오염수…''반인권·반생태'' 그늘 짙었다 | 2024-0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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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군 반환부지를 정비해 시민에게 공개한 서울 용산어린이정원. 6만6000㎡, 약 2만 평에 달하는 용산어린이정원은 서울 도심에서 푸르른 신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줄곧 ‘아이와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되고 있다. 개방 1년 만에 21만 명이 다녀간 용산어린이정원이 다크투어, 즉 재난이나 역사적 비극이 일어난 장소를 찾아가는 투어의 대상이 됐다.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동심을 키워갈 정원이 비극적인 장소로 지목된 이유가 무엇일까? 녹색연합의 용산다크투어에 동행했다. ■ 미군의 유류 유출, 용산에 괴물을 키우다 한강과 접해있어 선박을 통한 물류 운송이 용이했던 용산은 조선시대부터 물류 교역의 중심지였고, 이런 장점 때문에 조선군의 병참기지가 있었다. 이후 일본이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일본군을 한반도에 진주시키기도 했는데 이 중 20사단이 용산에 주둔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 용산기지는 미군에게 돌아갔다. 1949년 병력을 철수했던 미군은 6·25전쟁이 끝난 후인 1953년 8월 15일 용산에 주둔했고 이후 60년간 용산에 머물렀다. ‘서울 속의 작은 미국’이라 불리며 반세기 넘게 금단의 구역이었던 용산 미군기지. 그 안에서 벌어졌던 잔혹한 일들은 그들이 용산을 떠난 뒤 시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며 보이지 않는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가 2017년 미국의 정보자유법(FOIA)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30년간 용산 미군기지 내에서 발생한 유류 유출 사고는 84건이다. 2001년에는 녹사평역 지하철 공사 중 지하수 유류 오염이 됐는데, 당시 미군은 휘발유 성분 유출은 인정했으나 등유 성분 유출은 인정하지 않았다. 2006년 녹사평역 지하수를 조사하자 5개 조사 지점에서 기준치의 수백 배가 넘는 1급 발암물질 벤젠이 발견됐고, 여전히 기지 바깥으로 기름이 새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의 군수품 공급지 역할을 했던 한강로 1가 1-1번지 캠프킴 자리에서도 2006년 다량의 유류가 퍼져있는 것을 한국전력 직원이 발견했다. 기름의 종류가 미군에서 사용하는 JP-8 항공유로 확인됐으나 미군은 공동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정부는 기름이 유출된 상태의 땅을 반환받았고 땅값만 4조 원으로 알려진 금싸라기 땅에는 ‘사람이 살’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용산어린이정원은 캠프킴에서 700m가량 떨어져 있다. 2000년 미군의 독극물 방류 사건도 화제가 됐다. 미 군무원이 시체방부처리용 포드말린 용액 470병을 영안실 싱크대에 쏟아부어 독성물질이 한강으로 흘러든 이 사건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모티브가 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3년 6월 기준 녹사평역, 캠프킴 주변 등 기름 유출로 오염이 확인된 대지의 면적은 최소 1만2235㎡(약 3700평)에 달하고, 오염을 정화하는데 58억 원가량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 오염된 공간으로 초대받는 어린이 용산다크투어는 녹사평역에서 출발해 용산기지 담벼락길, 캠프킴, 용산어린이정원으로 이어졌다. 녹사평역 3번 출구를 나와 몇 걸음 걷자, 발아래로 이어진 집수정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염된 지하수를 관리하고자 녹사평역 인근에는 40여 개의 집수정이 있다는 게 투어 가이드인 녹색연합 박상욱 활동가의 설명이다. 곧이어 도착한 이태원광장에는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 청년들이 모여 있었다. 청년들 뒤로 보이는 그라피티가 그려진 철제 구조물은 젊음을 상징하는 이태원과 잘 어울리는 듯 보였다. 구조물 앞에 멈춰 선 가이드는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오염수를 모아둔 곳”이라며 “도시경관사업의 일환으로 몇 년 전 구조물에 그라피티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구조물 뒤로 넘어가자 그라피티에 가려져 있었던 더러운 집수정의 원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인체에 위험한 물질이 보관돼 있는 집수정은 화려한 그라피티에 가려져 바닥에 적힌 접근금지 표시를 발견할 수 없게 만들었다. 투어 참가자들은 “이렇게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데 겉모습만 바꾼다고 오염 문제를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삼각지역 인근 캠프킴 주변은 고층빌딩이 빼곡했다. 한눈에 봐도 금싸라기 땅임을 알 수 있는 현장을 바라보며 가이드는 “2006년 기름유출 사고 이후 여전히 캠프킴 지하수 주변으로 다이옥신과 비산 등 1급 발암물질이 검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84번의 유류 유출 사고가 있었던 용산 미군기지 땅에는 사람이 안전하게 머물 곳이 없어 보였다. 그 땅에 조성된 용산어린이정원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당연했다. 한국환경공단의 ‘(용산 미군기지)사우스포스트 환경조사 보고서’(2022)에 따르면 전체면적의 66.1%인 10만8920㎡에서 석유계총탄화수소(TPH)는 기준치 500㎎/㎏ 대비 36배, 비소는 9.4배, 납은 5.2배 등 여러 항목에서 기준치를 초과했다. 석유계총탄화수소에는 암 유발물질인 폴리아로메틱 하이드로카본 등의 물질이 들어있다. 환경단체들이 용산어린이정원 개방을 우려하자 2022년 5월 정부는 “임시 개방에 따른 노출시간, 노출량 등을 고려할 때 인체에 위해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어린이는 행동, 식습관, 대사 및 생리적 특성으로 인해 일부 환경오염 물질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며 정원 개방을 반대했다. 하지만 용산어린이정원은 2023년 5월 4일 임시 개방됐다. 토양환경보전법, 국토계획법 등에서 도시공원 또는 어떠한 토지이용시설의 임시 개방에 관한 정의나 절차, 요건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용산어린이정원 ‘임시 개방’ 이면에는 시민들의 목숨값이 담보되고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도록 아름답게 꾸며놓은 정원에서 투어 참가자들은 웃고 즐길 수 없었다. 참가자 채경미씨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에 이렇게 위험 요소가 많은데 덮고 가리는 데만 급급한 정부의 모습을 체험하게 돼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며 “아이에게 좋은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온 정원이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성씨도 “입장하면서부터 정원 관계자가 감시하고 따라붙는 상황을 겪으면서 국가의 감시와 통제를 피부로 느낀 시간이었다”며 “반인권적이며 반생태적인 이곳이 과연 국민들을 위한 장소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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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5-14 오전 10:12:04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