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나의 교직 생활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날이었다.
가장 바보스러운 날이기도 하다. 기억하기조차 죄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운 날이다.
어느 해 늦은 봄날이었다.
일과가 끝나고 교사들 모임이 있어 분주하게 뒷정리를 하고는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참이었다. 선생님들이 먼저 떠나고 거의 빈 교무실에 한 학생이 겸연쩍어하며 다가온다.
“선생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러냐, 급한 일인가?”
“급한 일은 아닙니다.”
학생이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한다.
낯은 익은데 내 반 학생은 아니고, 수업에 들어가는 반의 학생도 아니다. 급한 일은 아니라는 말에 이렇게 말했다.
“대단히 미안하구나. 오늘 선생님들 모임이 있어서 지금 밖에서 기다리시는데 네가 이해해 준다면 내일 만났으면 좋겠구나.”
“ 괜찮습니다.”
학생의 작은 목소리의 대답을 들으며 교무실을 같이 걸어 나왔다.
그게 아니었는데. 그게 아니었는데.
몇 번을 되뇌며, 얼마나 많은 자책을 했는지 모른다.
선생님들을 먼저 가시게 하고, 상담을 끝내고 만남의 장소로 후에 찾아가도 되었다. 아니 상담이 길어져서 선생님들과 합석을 하지 못하여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땅히 그랬어야 하는 일이었다. 이보다 더 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담임 선생님도 아니고, 수업을 받는 선생님도 아닌데 굳이 나를 찾아온 것은 그만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나를 찾아오기까지 얼마나 망설였을까? 얼마나 단단한 결심을 하고 왔을까? 그때 왜 미쳐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였을까?
나중에 알게 된 일이다. 한강 변에 홀로 놓인 책가방과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 누군가 황급히 112신고를 하게 되었고, 구급차가 와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떠오른 시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학습장에 기록된 인적사항으로 학교와 연락이 닿았다.
나에게는 아주 못된 버릇이 있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속담을 우스갯소리로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지 말자”라고 대꾸하며 평소에도 매사에 미루기를 잘한다.
나와 함께하는 학생과의 만남에서는 어떤 경우든지 결코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하고도 지나고 보면 미루는 버릇을 온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호되게 책하기도 한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톨스토이)
교단에 있을 때 왜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학생들을 더욱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가. 존경받고 사랑받는 교직의 소중함을 왜 진작 깊이 깨닫고 감사하며 생활하지 못했던가. 후회스러울 때가 많다.
어느 직업보다도 타인의 간섭을 덜 받고, 소신껏 일할 수 있으며, 사랑하는 만큼 사랑이 되돌아오는 교직 생활은 참으로 소중한 소임이었다는 생각에 지금도 가슴이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글 _ 정점길 (세례자 요한, 의정부교구 복음화학교 교장)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 38년 동안 교직 생활을 했다. 2006년 3월 「한국수필」에 등단, 수필 동호회 ‘모닥불’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가톨릭 사회복지회 카리타스 봉사단 초대 단장, 본당 사목회장, 서울대교구 나눔의 묵상회 강사, 노인대학 강사, 꾸르실료 강사, 예비신자 교리교사, 성령기도회 말씀 봉사자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의정부교구 복음화학교의 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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