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뉴스
- 전체 2건
[창간 36주년 특집] 본당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 2024-05-08 |
---|---|
한국 교회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신앙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0~2022년 만 3년간 코로나19가 할퀴고 지나간 뒤 교회는 미사 참여율과 성사생활 참여 등 신앙생활이 여전히 침채돼 있다. 이에 많은 본당과 사목자, 교우들이 전례를 중심으로 공동체성 회복을 위해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하고 있다. 모든 세대가 한마음으로 나서서 주일학교 학생들과 함께하고자 지혜를 모으고, 사목자들은 교우들과 더욱 적극 소통하며 1인 3역을 해내고 있다. 본당은 하느님 백성들의 믿음을 북돋는 복음의 전초기지다. 뭐니뭐니해도 본당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지난 4월 성유 축성 미사 강론을 통해 사제들에게 “본당 사목에 힘을 실을 것”이라며 “행사가 없어도 본당 사목 방문을 늘리고, 사목 성공담을 자료집으로도 펴낼 계획”이라면서 본당의 중요성을 거듭 밝혔다. 본지는 창간 36주년을 맞아 눈에 띄는 사목으로 공동체 회복을 넘어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본당들을 만났다. 초등생 4배 급증 비결 ‘관심·협력’ 부산교구 좌동본당 학생 가정에 전화해 미사 참석 호소 후원금 모금 등 다채로운 행사도 한몫 지난 4월 28일 부산교구 좌동본당(주임 조성문 신부) 신자들이 미사 후 한자리에 모였다.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들이 펼치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돕는 후원금 모금행사가 열린 것이다. 보편 교회의 ‘제1차 세계 어린이의 날’(5/25~26일)을 앞두고 마련된 이날 행사는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희망과 염원’을 주제로 2주간 그린 그림을 경매에 부쳐 본당 신자들이 구매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행사를 앞둔 아이들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선생님 제 그림만 안 팔리면 어떡해요?” “제 그림이 제일 싼 값에 팔리면 창피할 것 같아요.” 이윽고 시작된 ‘경매’. 하지만 발 동동 구르던 아이들의 걱정과 달리 100점에 달하는 그림이 순식간에 팔렸다. 열띤 후원금 마련 경매에 나선 어른들은 그림을 사놓고도 다시 팔라고 내놓기까지 했다. 돈보다는 마음을 나누는 경매가 펼쳐졌다. 이렇게 모인 후원금은 300만 원에 달했다. 본당은 앞서 부산교구 제4차 탄소단식챌린지에서 지구 1등을 하면서 받은 상금 50만 원을 더해 350만 원을 교황청 재단 가톨릭 사목 원조기구 고통받는 교회 돕기 ACN 한국지부에 전달키로 했다. 좌동본당의 단결과 사랑을 교우 전체가 체험한 자리였다. 2년 전까지 좌동본당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주일 미사 참여 인원이 이전의 30% 수준으로 줄고,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 역시 절반이 줄어든 40여 명만 남는 등 위기에 처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2년 사이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이 4배가 넘는 183명으로 늘어났다. 반전의 비결은 ‘관심’과 ‘협력’이었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옛 속담처럼 본당 주일학교를 되살리기 위해 사제와 수도자·평신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선 것. 가장 먼저 어머니들 모임인 자모회원 6명이 교리교사를 자원했다. 청년들은 주일학교 부활 행사와 피정 진행을 도왔다. 본당 어르신들은 ‘할머니·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성경 이야기’로 신앙 전수에 힘썼다. 본당 주일학교를 담당하는 보좌 신부는 ‘후원금 경매 행사’와 ‘이콘 교육’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주일학교를 일으키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자모회원이자 현 주일학교 교무인 김민경(도르테아)씨는 “아이들 신앙의 미래는 학부모들이 먼저 챙겨야 한다고 여겼다”면서 “미사에 나오지 않는 학생 가정에 전화해 공동체로 돌아올 것을 호소했는데, 같은 부모로서 공감했는지 많은 이가 호응해줬고 이만큼 함께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김 신부는 “‘우리 본당’이라는 강한 소속감으로 모든 세대의 많은 교우가 공감하고 노력해줬기에 이런 반전이 가능했다”면서 “젊은이를 위한 사목, 그들과 함께하는 교회가 되려면 공동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함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흔들림 없이 30년 이어온 ‘기도 전통’ 서울대교구 신내동본당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기도 모임 활성화 미사 끝나면 놀이터이자 대화 공간 변신 “여기서 성경에 나온 예수님 모습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지난 3월 2일 서울대교구 신내동본당(주임 최동진 신부) 어린이 미사 시간. 본당 부주임 김영호 신부가 강론 시간에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교리 질문을 던지자 엄숙했던 미사 시간은 아이들의 아우성으로 들썩였다. “저요! 제가 이야기할래요.” “제가 먼저 들었어요.” 얼마나 많은 아이가 손을 들었는지, 손들지 않은 아이를 찾는 게 더 쉬울 정도였다. 신내동성당은 미사 후면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한다. 아이 수십 명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이따금 함성도 울려 퍼진다. 저녁이 깊어도 아이들은 성당 마당을 떠날 줄 모른다. 그 시간 부모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 웬만한 성당에선 보기 어려운 풍경이 신내동성당에선 일상처럼 이어지고 있다. 신자가 줄어드는 ‘탈 신앙’ 시대에 신내동본당의 ‘신앙 역주행’은 더욱 특별하다. 이 본당이 활력있는 신앙 공동체 모습을 이어온 원동력은 다름 아닌 ‘기도’다. 본당에는 지난해 15명 어린이가 쁘레시디움을 창단한 데 이어, 올해 두 번째로 20여 명의 어린이가 참여하는 소년 쁘레시디움이 만들어졌다. 고사리손을 모아 기도손한 어린이들이 기쁜 표정으로 쁘레시디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기도가 일상처럼 받아들여진 덕분이다. 본당 기도 셀(Cell) 대표 정소영(소피아)씨는 “신내동본당은 30년 전 상봉동본당에서 분리되어 나올 때부터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기도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었다”면서 “코로나19로 성당 문을 닫았을 때에도 신자들이 방역 수칙을 지켜가며 야외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바칠 정도로 기도가 생활화돼 있다”고 전했다. 기도 전통이 이어져 온 비결은 가정 신앙의 ‘선순환’이 바탕이 됐다. 지난 3월 두 번째 소년 쁘레시디움이 만들어진 뒤 이들의 어머니 14명도 본당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함께하기로 하는 등 세대를 넘어 서로 흔쾌히 ‘신앙의 등불’이 돼주고 있다. 최동진 주임 신부는 “본당 평일 오전 10시 미사에는 어르신들을 포함한 신자 200명이 참여한다”면서 “어르신들의 열성적인 신앙을 다른 세대도 자연스럽게 배우고 전수받는 분위기가 잘 조성돼 있다”고 했다. 본당 수도자의 숨은 노력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본당 어린이 교리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임명자(거룩한 말씀의 수녀회) 수녀는 아이들이 하느님을 알고, 신앙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춘 토론식 교육으로 소통하고 있다. 임 수녀는 소년 쁘레시디움 창단 전 2개월 동안 매주 3회씩 어린이들과 기도 모임을 하며 기도하는 기쁨과 신앙을 알려줬다. 임 수녀는 “교리교육을 하는 동안 어려운 기도문도 스스로 척척 읊고 설명하는 아이들을 보며 교육으로만 그치기 아쉬워 쁘레시디움 활동을 제안했다”며 “이 모든 게 신앙의 가치를 잘 전수해준 학부모와 이어받은 아이들이 흔쾌히 응해준 덕분”이라고 했다. 본당 공동체 활성화의 비결로 사제와 수도자를 비롯한 사목자와 평신도 간 상호 존중을 꼽기도 했다. 임 수녀는 “사목자는 신앙 속에서 평신도를 이끄는 존재인 동시에 공동체의 일원이라 여기는 상호 존중 속에 가정 신앙과 기도, 세대 간 신앙 소통의 힘으로 교우 전체가 단단히 하나 되어 나아가고 있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장현민 기자 시골본당의 맞춤형 ‘토탈 사목’ 청주교구 학산본당 어르신들 위해 미사 때마다 승합차 운전 농부 신자들 논밭 일일이 다니며 축복 주일 미사 참여자 수 100명 남짓의 작은 본당이 지역 사회에서 복음화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축구에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는 ‘토탈 사커’가 있다면, 신앙엔 ‘토탈 사목’이 있다.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 위치한 청주교구 학산본당(주임 이선찬 신부)이다. 교우 90%가 농부고, 60대 후반이 본당 막내인 고령화된 공동체다. 하지만 코로나 끝 무렵인 2021년 8월 이선찬 신부가 부임한 이후 신앙 열기를 되찾고 있다. 어떤 비결이 있는 걸까? 이 신부는 가장 먼저 본당 사제관에서 렌탈해 써오던 제품들을 다 끊었다. 그 돈으로 100인치 중고 TV를 구입해 성전에 설치했다. 눈이 어둡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어르신을 위한 배려였다. 이후 대형 화면으로 ‘매일미사’를 같이 보며 밑줄도 치고, 강론을 손으로 써가며 어르신 맞춤 시청각 전례를 진행했다. 그 덕에 신자들은 “강론이 훨씬 듣기 좋고 잘 보여 머리에 쏙쏙 박힌다”며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신부는 ‘본당 운전기사’도 겸하고 있다. 먼 곳에 사는 어르신들은 미사 때마다 택시를 이용해왔다. 학산면 내 개인택시는 단 두 대. 그마저도 최근 기사 한 명이 은퇴했다. 이 신부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신자들의 미사 참여 열망은 크다”며 “교통 약자인 어르신들을 위해 9인승 봉고차를 몬다”고 했다. 본당 신자 90%가 농부다. 사제는 신자들의 농지와 텃밭 곳곳을 일일이 다니며 축복해줬다. “신부님, 뭐하러 논밭까지 다 오십니까?” 처음 신자들은 일상에까지 관심 갖는 사제의 행동을 생소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활짝 열게 됐고, 자연스레 ‘신앙의 생활화’로 이어졌다. 학산본당 중고등부 학생은 5명이 전부다. 모두 복사단이다. 이 신부는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돌아가며 복사를 서주는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넘어 존경스러운 마음마저 든다”고 했다. 이 신부는 복사단 학생들뿐 아니라, 관할 내 초·중등학교에 성소후원금 명목으로 매달 30만 원씩 지원하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성소를 위하고, 시골 학교의 어려운 형편을 위해서다. 학생들은 손편지와 카네이션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아울러 재정의 투명성과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위해 사제의 지출 최종 결정을 본당 사목회장에게 맡겼다. 이 신부는 “문고리 하나 바꾸고 싶어도 회장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하게끔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신부는 열심히 할 수밖에 없고, 신자들도 교회 재산과 성당에 대한 주인 의식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지역 사회와의 연계도 중요시한다. 지역 행사에 대부분 참여하면서 본당 이름으로 발전 기금을 낸다. 타종교 지도자와의 만남도 이어오고 있다. 이 신부는 “지역 사회 안에서 학산본당을 기억하고 있다는 자체로 교회의 존재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본당은 공소도 두 군데 관할하고 있다. 이 신부는 미사가 아예 없던 공소에 매주 토요일 미사를 만들었고, 매달 한 번 미사가 있던 공소는 세 번으로 늘렸다. 그 결과 올해 주님 부활 대축일에 10명이 세례를 받았다. 10년 만에 가장 많은 인원이다. 코로나 이후 신앙 회복의 과제를 안고 있는 교회에 시골의 작은 본당이 신자·지역 사회와 시노드 정신으로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서울대교구 종로본당 모임 찾아가고 휴대전화 번호 공개 크고 작은 이벤트 끊임없이 이어져 서울대교구 종로본당 주임 한호섭 신부는 미사 때 성가를 부른다. 1년 전만 해도 토요일 저녁 주일 미사에는 신자도 많지 않고 성가를 부르는 이도 없어 파이프 오르간 독주만 이어질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한 신부는 제대에 올라 입당성가 끝자락을 부르고, 제대를 떠나기 전 파견 성가 앞자락을 목청껏 부르곤 했다. 요즘도 한 신부는 성가를 부른다.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 화음을 넣는다. 이는 어우러질 다른 음이 풍성해졌다는 것이고, 멜로디를 부르는 상당수의 신자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렇다, 종로본당은 달라졌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주일 미사 기준 많아야 300명이던 참여 인원은 올 상반기 평균 400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성탄 음악회에 이어 3월부터 매달 한 차례 진행되는 성(聖)음악 미사에도 발 디딜 틈이 없다. 뿐만 아니라 성탄절 뱅쇼·맥주와 함께하는 아가페 시간, 부활 성야 미사 후 달걀 대신 통닭 나눔부터 최근 견진성사 후 한 신자의 소문난 붕어빵 기부행사까지 크고 작은 이벤트가 끊이지 않는다. 주임 신부가 기획한 것도 있고, 이에 질세라 교우들이 나선 것도 있다. 한 신부는 코로나19 엔데믹(일상적 유행)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그의 특별한 사목이 없었다면 주거지도 아닌 데다 신자들의 연령대가 높은 도심 한복판 종로성당에서 이렇게 활기찬 모습을 되찾긴 힘들었을 것이다. 한 신부가 말하는 ‘기본에 충실한 사목’은 ‘사제가 교우들에게 다가가 함께 신심을 함양하되 신나고 재미있는 신앙생활로 늘 성당에 오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시쳇말로 ‘들이댔다’.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해 교우들과 빠른 소통을 시도하는가 하면, 모임이나 회합이 있을 때는 부르지 않아도 찾아갔다. 그리고 밥을 짓기 시작했다. “새벽 미사에 열 명 정도 오시니까 ‘근처 해장국집에 가실래요?’로 시작했는데, 좀 친해지다 보니 으레 매주 함께하게 됐고, 몇 번은 본당 주방에서 제가 만들었어요.” 한 신부는 그렇게 미사에 참여한 교우들, 사목위원들과 청년들을 위해 황태해장국·내장국·김치찌개 등을 끓였다. 수시로 사제관에 초대했고, 망고 빙수를 만들고 커피를 내려 선물하기도 했다. “제가 돈을 어디다 쓰겠어요, 그럴 때 쓰죠.(웃음) 우리나라 사람들은 같이 밥을 먹으면 좀 친해졌다고 느끼잖아요. 식사하면서 관심사도 알게 되고, 얼굴을 익히니까 성당에서 봐도 눈에 더 들어오고요.” 한 신부의 사비는 파티마 현지에서 제작한 성모상을 구입할 때도, 사순 시기 나눔의 마중물이 되도록 신자 300여 명에게 각각 7000원이 담긴 봉투를 건넬 때도 사용됐다. 토요 오전 미사를 신설하고, 장례 미사와 병자성사·혼인 면담 등은 신자들의 스케줄을 최대한 반영했다. 교우들도 그 남다름을 모를 리 없다. 신해균(안토니오) 사목회장은 “어느 본당에서 신부님과 이렇게 친하게 지내겠느냐”고 했고, 정상선(체첼리아) 천사들의 모후 단장은 “레지오 훈화도 빠지지 않고 해주시니 관심과 보살핌을 받는 느낌”이라고 했다. 한기학(마르코) 총구역장은 “힘들지 않은지 여쭤본 적 있는데, ‘교우들을 살피고 본당을 활성화하는 게 사제로서 할 일’이라고 하셨다”면서 “말씀을 실천하시는 모습에 교우들의 신앙심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우 외향적일 것이라 예상했던 한 신부의 MBTI는 ‘ISTJ’, 그러니까 내향적이란다. 타고난 성향을 넘어 사제로서 ‘기본에 충실한 사목’이 많은 가지를 뻗어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
|
[가톨릭평화신문 2024-05-08 오전 11:12:06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