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동안 발전된 서양음악의 장구한 역사를 보면 신비하고 놀랍기 그지없다. 아득하게 긴 역사지만 현대의 우리가 듣고 즐기는 음악이 만들어지는 시기는 후반 300년에 대부분 집중되어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서양음악의 기원은 교회음악이란 것이 정론이다. 교회에서 제례용으로 쓰이던 그레고리안 칸트에서 화성이 시작되었고, 칸트의 선율이 세속 리듬과 결합하면서 폭발적인 수요가 일기 시작했다.
초기의 서양음악은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장단조 음계의 개념보다는 선법(Mode) 위에서 쓰였다. 도리아·프리지아·리디아·믹소리디아·아이오니아(현대의 장조)·에올리아(현대의 단조)로 불리는 이 선법은 으뜸음의 위치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가 있다. 우리가 고전 이전 시대의 르네상스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신비하며 색다른 감성은 이들 선법이 사용된 결과다. 하지만 선법을 쓰든 현대의 장단조를 쓰든 중요한 규칙이 있다. 모든 음계는 으뜸음(Tonic)이 존재하며, 이외의 음들은 으뜸음을 보좌하고 연계하는 역할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으뜸음의 개념은 서양음악에서 가톨릭 사상의 본질과 궤를 같이한다. 으뜸음에서 완전 5도 위의 음은 지배당하며(Dominant) 5도 아래 음 역시 아래에서 지배당한다(Subdominant). 다장조를 예로 든다면, ‘레’ 음은 으뜸음 위에 있기 때문에 윗으뜸음(Super Tonic), ‘미’ 음은 으뜸음과 딸림음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가온음이라 불린다(Mediant). ‘라’ 음도 으뜸음과 아래딸림음 사이에 있기 때문에 아래 가온음(Submediant)이라 하며, ‘시’ 음은 으뜸음으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이끈음(Leading Tone)이라 한다. 음악의 시작과 끝에 지정되어 있는 으뜸음을 제외한 나머지 음들은 으뜸음으로 가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초기 서양음악의 견고한 구조다.
당시 음악가들은 주님을 으뜸음으로 상징했다. 모든 음악은 으뜸음으로 시작해 으뜸음으로 끝내는 것이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종교적 신념에도 부합했던 것이다. 미끄러지듯 연결되는 음계들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거룩함은 당시에는 엄청난 종교적 성스러움을 체험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그레고리안 성가, 베네딕트 수도원의 가톨릭 찬송)
이 으뜸음 개념은 현대까지 지속된다. 으뜸음의 개념을 극대화한 낭만주의 음악, 형해화한 12음 기법(Serialism) 역시 기존의 법칙을 염두에 두지 않았으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으뜸음이 계속해서 자리를 옮기며 막강한 존재감을 뿜고 있는 바그너의 음악도(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 기존의 법칙을 완전히 해체한 베베른(교향곡 Op.21)도 목적성으로 본다면 으뜸음의 원칙이 없었으면 나오지 않았을 시도들이다. 지금 우리가 즐겨 듣는 BTS나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을 들어봐도 확연히 이 으뜸음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변곡을 통해 현대까지 발전한 음악이지만,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유일의 법칙이 아직까지 모든 음악을 지배한다는 것은 놀랍고도 경이로운 것이다. 신앙의 본질을 음악에서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 큰 과장은 아닐 것이다.
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