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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 간절했던 청년들, 짐바브웨에 ‘희망’ 선물 2024-05-08

‘기회’를 박탈당한 시대에 청년들은 가장 어려움을 겪는 세대로 손꼽힌다. 언론에서는 ‘N포세대’ 등 동정 어린 키워드로 청년들의 메마른 현실을 조명하고, 사회에서는 각종 지원 제도와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에 따라 청년을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불쌍한 수혜자’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정착하고 말았다.
그 편견을 깨부수고자 청년문간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이문수 가브리엘 신부, 이하 청년문간)은 지난해 ‘무카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13명의 서포터즈를 모집, 올해 4월 16일~25일 짐바브웨에서 청년들의 손으로 희망을 전했다. 자립은커녕 생계유지조차 어려워하는 지구촌 이웃에게 청년의 고유한 아름다움으로 희망을 안겨주고 돌아온 ‘무카나 서포터즈’의 현지 활동 이야기를 들어본다.


 

■ 기회를 선물할 기회

 

 

청년문간은 청년들이 짐바브웨 고퀘 지역 주민에게 ‘무카나’(짐바브웨 공용어인 쇼나어로 ‘기회’)를 선물할 기회를 주고자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지속적으로 노동할 수 있는 기반 없이 하루 두 끼, 옥수수죽으로 배고픔만 달래며 주저앉은 주민들이 자립의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청년들은 현지에서 손수 미싱기, 태양광 패널, 각종 부자재를 구매해 봉제 시설(가칭 ‘희망 팩토리’) 설비를 지원했다. 또 현지 활동이 시작되기 전에는 사업비 마련을 위한 모금 및 크라우드펀딩도 청년들이 스스로 기획·실행했다.

 

 

“그분들이 그냥 밥만 먹고 사는 것을 넘어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주고 싶었어요.”

 

 

청년들이 주민들에게 선물하려던 것은 피상적인 연민이 아니라 존엄한 인간의 삶이었다. 그들의 자립에 기여할 수 있는 도움을 주는 것뿐이 아니라, 동료 인간으로서 함께 누렸으면 하는 소소한 가치들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한 청년 비영리봉사단체로부터는 선글라스 100여 개를 기부받아 주민들에게 나눠주었다. 자외선이 강한 아프리카에 꼭 필요한 물건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일생 가난에 내몰려 스스로 꾸며볼 기회조차 없었을 주민들의 사정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잘사는 나라 사람들의 전유물인 사치품이 아니라, 사람 누구나 자신을 보다 소중히 생각할 수 있는 선물로 마련했다.


 

 

또 평소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청년들은 주민 200여 명에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서 선물하기도 했다. 그곳 주민들은 살면서 자기 모습을 사진으로 간직해 본 적이 없다는 말에 출국 전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챙겼다. ‘인생샷’(살면서 가장 잘 찍은 사진) 한 장씩 선사해 ‘아무리 힘든 삶이면 뭐 어때, 나는 이미 충분히 멋진 사람인걸’ 하는 긍지를 심어주려는 마음이었다.

 

 

듬뿍 담긴 진심과는 달리 어려움도 따랐다. ‘희망 팩토리’ 설비 지원을 위해 수도 하라레에서 물건을 사서 공장이 있는 고퀘까지 이동하려면 차로만 9시간가량 걸렸다. 길도 거의 비포장도로라 많이 흔들리고 험했다. 선글라스를 챙겨 출국할 때는 공항에서 예상 못 한 관세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하지만 기회 없이 놓인 이웃에게 기회를 선사하는 기쁨은 그 모든 힘겨움을 상쇄했다. 즉석에서 나온 폴라로이드 사진에 신기해하면서도 사진 속 자기 모습에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기뻐하던 주민들, 한순간 피어나는 꽃처럼 얼굴에 드리웠던 무기력함을 거둬버리는 웃음은 잔잔한 감동을 남겼다.

 

 

특히 살면서 처음 써보는 선글라스에 대해서도 주민들 호응은 예상외로 높았다.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곳곳에 있는 주민들 무리마다 적어도 2명씩은 선글라스를 낀 채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는 모습은 청년들에게 영화 속 명장면처럼 남았다.

 

 

“저희도 소중한 기회를 선물 받은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희망을 안겨줄 기회 말이에요.”

 

 

청년들은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을 내면에도 크나큰 긍지가 차올랐다”고 입을 모았다. “얼마나 가졌고 성취했느냐와 상관없이, 또 도움의 크기가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나도 누군가에게 웃음을 줄 수 있구나” 하는 기쁨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준 박재근(28·마티아)씨와 한은진(23)씨는 “우리가 가진 능력이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누군가를 활짝 웃게 해줄 수 있다는 체험은 지금도 가슴 벅찬 기억으로 남았다”며 “나아가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 메아리쳐 돌아온 희망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마음도 잘 돌볼 여유가 없었고, 내면의 이야기에도 귀를 닫고 있었죠.”

 

 

갈피가 잡히지 않는 진로, 거듭되는 실패, 그에 따라 커져만 가는 불안…. 서포터즈도 여느 청년들처럼 자립 성장통을 겪고 있다. “배운 것이 명확하게 없는 것 같고, 지금까지 닦아 온 스펙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는 공통된 호소대로다. 간절히 원하는 정답은 야속하게도 단서조차 보이지 않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내 잘못이구나” 하는 자책의 늪으로만 깊이 빠져든다.

 

 

“나는 도움받기만 하는 무력한 존재인가 봐” 하며 자신의 가치에조차 회의적이 되는 청년들에게 서포터즈 활동은 ‘나는 청년인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이미 아름답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영화인을 꿈꾸는 권나영(26)씨는 짐바브웨 백수와 한국 백수가 만났을 때 어떤 대화를 나눌지를 초점으로 현지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다. 권씨는 “과정이 행복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연기 오디션 100회에 지원했을 때 한두 번 연락이 돌아오기도 힘든 현실에 떠밀렸던 권씨는 그간 결과에만 집착했다. 그런 그는 “짐바브웨 사람들을 피사체로 담고, 그들과 소통하는 과정 자체에서 치유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나의 작은 재능으로 누군가 좋은 경험을 하고, 행복해하고, 서로 섬기고 섬김받는 그 과정 자체가 소중한 선물이었다”는 깨달음이다.

 

 

“쓸 수 있는 글이 ‘영찍영’(영화 찍는 영화)에 갇혀 있는 것 같아 늘 고민이었다”는 영화감독 지망생 오승현(24)씨는 “새로운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청년들 내면에 잠재된, 외연을 넓혀 나가는 사랑에 눈떴다”는 오씨는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자체를 궁금해해야 하는 영화감독의 미래로 한 걸음 나아간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이문수 신부(글라렛 선교 수도회)는 “청년들이 소유, 성취 등 조건과 상관없이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과 능력을 표현하고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무카나 프로젝트의 뼈대”라고 전했다. 이어 “수혜의 대상처럼만 인식되는 청년 세대들이 사실은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하고 스스로도 자립 성장통을 이겨나가는 멋진 잠재력이 있음에 모두가 감탄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05-08 오전 9:12:04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