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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258·끝) 라스트 버스(The Last Bus, 2023) 2024-05-02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2코린 5,18)

질리스 맥키넌 감독의 ‘라스트 버스’는 스코틀랜드 존 오그로츠에 살고 있는 노년의 주인공 ‘톰’이 1300㎞ 떨어진 랜즈 엔드까지 버스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버스 앞자리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진 애인 때문에 입대를 고민하는 젊은이, 어머니와의 갈등에 눈물을 흘리는 소녀. 그는 비록 늙고 아픈 몸을 지녔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정비공 직업을 살려 망가진 자동차를 고치고, 종이 개구리를 만들어 아이에게 선물하고, 버스 안에서 히잡을 쓴 여인에게 막말하는 청년을 쫓아내기도 한다.

낯선 이들이 그를 돕는 순간도 많았다. 깜빡 잠들어 늦은 시간 버스 종점에 도착해 오갈 데 없을 때 그를 데려가 치료해 주고 하룻밤 잠자리를 제공하는 부부가 있었고, 버스비 때문에 낯선 곳에 내릴 수밖에 없을 때 차에 태워주고 아내의 생일 잔치에 초대한 친절한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있었고, 비가 내릴 때 우산을 씌워주는 이도 있었다.

그는 왜 경로 우대증과 작은 여행 가방을 챙겨 이 여행을 떠나는 걸까? 영화 중간중간 회상 장면을 통해 그의 삶을 조금씩 들여다볼 수 있다.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던 아내가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났고, 일찍 세상을 떠난 딸로 인한 상처 때문에 먼 존 오그로츠까지 오게 된 사연도 알게 되고, 그의 건강도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는 상태인 것이 드러난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진작 포기해야 할 상황이 반복되지만, 그는 랜즈 엔드까지 기필코 가려고 한다. 중간중간 아내와의 추억이 서린 곳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오랫동안 외면하며 가지 못했던 딸의 묘지에 가족사진을 올려놓는다. 드디어 랜즈 엔드에 도착한 그는 아내의 고백을 들었던 바위 앞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간다.

잠자리에 들기 전 바라보는 십자고상과 리버풀 팬들 앞에서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이 여행이 하느님 안에서의 화해의 과정이라는 걸 드러낸다. 비록 아내와 함께하지 못했지만, 너무나 사랑했던 딸의 묘지를 방문해 못다 이룬 딸과의 화해를,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과 장소를 소중하게 되새기며 아내와의 화해를 이루어 간다.

우리는 하느님의 시간(카이로스) 안에서 우리의 시간(크로노스)을 살아간다. 무한에 가까운 긴 시간처럼 보이지만 그 시간은 한정적이고,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선한 결심을 하는 때는 꽤 시간이 지난 후에나 가능하다. 무엇이든 지금 여기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은총의 부활 시기에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과의 화해를 깊이 체험하며 그 화해의 신비를 가족과 이웃 안에서 살아가자.

온라인 채널 관람 가능

조용준 신부(성바오로수도회, 가톨릭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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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년간 ‘영화의 향기’를 연재해주신 가톨릭영화제 관계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05-02 오전 10:52:02 일 발행 ]